[追慕의마음]
동요
<오빠생각>의 최순애님
나의 사랑 나의 어머니
지금은 천국에서 오라버님과 함께 하시지요?
천국으로 가신지 11주기를 맞이해 어머님께 카네이션 한송이를 드립니다
나의 어머님 (뜸부기 할머니의 집안 이야기)
오빠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린이》, 1925. 11)
동요에 얽힌 이야기
일본으로 유학 가셨던 오빠(저에게는 외삼촌)가 일본 지진이 일어나고 그후 소식이 두절 되어 고심하시던 외할머니할아버지 그후 돌아 오신 외삼촌을 다시는 유학을 보내시지 않았고 ,외삼촌께서는
서울로 올라가셔서 방정환 선생님과 잡지사 일을 하셨다 그시절 어머니 께서 그 오빠를
그리워하며 지은 동시이다.
어머님은 1914년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셨고,1998년 임종하시기 까지 독실한 신자이셨다
경기도 수원 출신.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아버지 최경우와 오빠 최영주(본명최신복)가 소파 방정환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까닭에 자연스럽게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빠 생각>으로 문단에 나와 윤석중, 이원수, 서덕출과 함께 '기쁨'의 동인으로 활약하여 동요 <그림자>, <우산모자> 등을 발표했다. 1936년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와 결혼했다. 이후 꾸준히 동요를 발표했는데 동시집을 내려고 준비한 원고가 6·25 전쟁 중에 타버려서 남아있는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1925년 오빠생각이 어린이지에 입선 하셨는데 어머님이 쓰신 동시엔 비단구두가 아니고
비단 댕기 로 지은 것을 외삼촌께서 비단 구두로 고치 셨다고 한다.
어머님 말씀이 방정환선생님께서는 집으로 자주 오셨고 오시어 이야기 보따리를 열면
너무나 재미있어 볼일도 못 보시고참으셨다고...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방정환 선생님과 외삼촌은 어린이잡지일을 함께 하셨고, 외삼촌께서 수원에서 화성 소년회를 이끌며
해마다 방정환을 초대하여 동화회를 열 만큼 소년운동에 열심이었던 분이셨다.
동화회에서 방정환 얘기를 듣고 순사도 울었다는 그 유명한 일화도 이 화성 소년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다.(최영주, 순검과 소파, 1931. 8)
외삼촌(최경주)은 방정환과 함께 개벽사 일을 하시기도 했는데 방정환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같이 하셨던《어린이》 잡지계속 편집을 하셨다.
외삼촌 은 편집의 귀재였다고 하는데 마해송은 최영주를 '참으로 활자를 아는 사람'이라고
기억한다.(마해송 수필집 《편편상》)
외삼촌은 나중에 '박문서관'에서 일을 하며 방정환 전집(1940년)을 내기도 했다.
또 방정환의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운 일로도 유명하다.
1936년, 방정환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도 5년이 지났건만 무덤도 없이 홍제원 화장장 납골당에 있었다.
이를 가슴 아프게 여겼던 외삼촌은 윤석중과 뜻을 모아 월간 《중앙》에 '소파 묘비 건립 모금 광고'를
내고 여러 사람들의 뜻을 모아
망우리 아차산에 방정환 묘를 만들고 묘비도 세웠다. 그리고 1937년,
자신의 아버지(수수꽃다리의 외할아버님)가 돌아가시자 수원에 있는 선산을 두고 소파 묘 아래쪽에
아버지 산소를 마련했다.
방정환 후원자이시었던 아버지를 방정환 가까이 모시는 일이기도 했고
또 자신이 소파 묘를 자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뒤 갓나서 죽은 자기 아들도 이곳에 묻었고 1944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난 외삼촌도 유언에 따라
방정환선생님 옆에 묻히셨다.
어릴때 할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뵈었는데 너무 오래 된 기억 속에서 이글을 쓴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어머님께서는 열두 살 때인 1926년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되는 동요 <오빠생각>을 지으셨고, <고향의 봄> 작사자 아버지(李元壽·1911∼1981)씨와 함께 초창기 우리 아동문학을 개척했다. 부모님의 인연은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에 어머님이<오빠생각>을 투고하고 아버님도같은 해 이 잡지에 <고향의 봄>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보통학교에 다니시던 부모님은 서로의 작품을 보고 10년간 편지를 주고 받았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윤석중(尹石重)씨 등과 <어린이> <기쁨社(사)>의 동인으로 활동하셨다. <고향의 봄>은 홍난파 곡(1927년)으로 유명해졌으며 <오빠생각>도 박태준 곡(1930년)으로 어린이들의 영원한 애창곡이 됐다. 1935년 항일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른 아버님은 병약해 배화여고를 중퇴한 최 씨를 수원의 집으로 찾아가 결혼 허락을 받았고. 이듬해 두 분은 결혼했다. 최초의 문인부부 탄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님은 결혼 후 작품활동보다는 아버님의 뒷바라지에 힘쓰셨다.
나는 가끔 여러 여성 잡지,새가정에 익명으로 글을 투고하셔서 책이 배달 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어린이 잡지에서
외삼촌 최신복(필명 김영주)과 방정환 묘비
창원 이원수 문학관에서
정원 라일락 앞에서
소설가황순원선생님 사모님(노랑저고리)
시인서정주선생님사모님(옥색저고리)
아동문학가이원수사모님(분홍저고리 ,울엄마)
황순원선생님 고희 축하연에 어머님과 함께(어머님과 다정하게 지내시던 사모님)
좌로부터 수필가조경희여사, 이진희 문공부장관, 어머니최순애여사 ,국악인 김소희여사
작은 오빠 ,나 어머니, 동생과 함께
아버님 에술원상 시상식 날
http://www.youtube.com/watch?v=JqfE-G79b8g ◀눌러보세요
미국에 계신 큰 오빠 께서, 어머님 동요에
제가 찍었던 사진에다
자신이 하모니카를 연주해서 만든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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