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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500년 전 슬픈 사랑이 종로구에서 되살아난 정순왕후의 妃 愛 悲

릴리c 2010. 4. 8. 22:29

500년 전 슬픈 사랑이 종로구에서 되살아난 정순왕후의

   

평소 지나다니는 길목에 역사적 사실史實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곳의 표지석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역사가 숨쉬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경이롭게 보인다.

종로구 숭인동은 조선 제6대 왕 단종(1441~1457)과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의 비애가

서린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종로구 숭인동 청룡사, 동망봉, 청계천 영도교...

이곳들은 조선역사상 가장 비운의 여인이랄 수 있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그동안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단종과 정순왕후의 비련의 사랑얘기가

종로구청 문화공보과에 의해 창작 뮤지컬 <妃‧愛‧悲>로 탄생했다. 

  

 

 

 

왕비 간택...솥뚜껑을 즈려밟고...

초간택에 참가하는 처자들의 복장은 송화색 저고리에 다홍치마, 저고리 위에 덧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입는다.

이렇게 예복을 갖추고 입궁할 때에는 세를 내서라도 최소한 사인교를 타고 간다.

가마 앞, 뒤에는 몸종과 유모가 따르며 더 갖춰진 신분의 아가씨는 수모(미옹사)까지 딸린다.

없는 경우에는 유모가 대신한다.

 

대궐문에 당도하면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궁문턱을 넘어설 때 미리 준미해 놓은 솥뚜껑의 꼭지를 밟고 넘어가는

특이한 풍속이 있다.

입궁의 순서는 호주의 관직과 신분의 차에 의하여 고직과 신분이 높은 딸의 순서대로 입궁하게 되며

심사방법은 30명 내외의 처자들을 한 줄로 세우고 왕을 포함한 왕족들은 발을 치고 보는데 이 경우 당사자인 신랑은

참여치 않는 것이 전례라고 한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세종실록에는 단종이 스스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야사에는 세조가 사약을 내리자 단종은

잔심부름 하던 사람을 시켜 자신의 목에 활줄을 감고 잡아당기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실록과 야사 기록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해서 단종은 17세의 한창 나이로

영월에서의 외롭고 힘겨웠던 유배생활 4개월 만에 파란의 삶을 마감했다.

 

동강에 버려진 시신은 당시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세 아들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업고 영월 엄씨의 선산으로 가 장사를 지낸 다음, 계룡산에 있는 동학사에서

3년상을 지내고 후환이 두려워 일생을 숨어 살았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15세 때 나이 어린 단종(당시 14세)의 왕비가 되어 그가 영월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자

비구니가 되어 청룡사에 들어가 눈물과 한으로 평생을 보냈다.

그녀가 왕비가 되어 단종과 함께 지낸 시간은 겨우 3년, 여인으로서 가장 풋풋하고 아름다운 15세에서

18세 때의 일이다. 그 후 죽은 지아비를 애타게 그리며 인고의 세월을 64년이나 보냈다.

 

정순왕후가 죽은 단종을 생각하며 그가 있던 동쪽을 향해 통곡했다는 '동망봉'(동망산)은 지금의 숭인공원이다.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흰 소복을 입고 이곳에 올라 영월을 향해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곡소리가 애절해 산 아래 동네까지 들렸고, 마을 여인네들도 정순왕후와 같은 심정이 되어 땅 한번 치고,

가슴 한번 치는 '동정곡(同情哭)'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순왕후를 돕는 백성들의 따뜻한 마음씨는 영도교 근처에서 열렸던 '여인시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백성들은 생활이 어려운 정순왕후를 돕기 위해 여성들만 출입할 수 있는 채소시장을 열어 공짜로 왕후와

시녀들에게 신선한 푸성귀와 먹을거리를 전해주었다. '역적의 아내'로 낙인찍힌 왕후를 관(官)의 감시로

드러내놓고 도울 수 없었던 백성들이 여자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감시를 피한 것이다.

현재는 숭신초등학교 앞 표지석만이 당시 사연을 전해준다.

 

 

 

왕비와 시녀들이 옷감을 물들여 생계를 꾸려간다.

 

종로구 숭인동 청룡사에서 왼쪽으로 돌아 나와 창신 쌍용아파트의 샛길로 들어서면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지었던 '비우당'(庇雨堂)이 나온다. 비우당 뒤에 조그마한 우물이 있는데, 바로 '자지동천(紫芝洞泉)'이다.

당시 마땅한 생계거리가 없이 어렵게 지내는 왕후를 안타깝게 여긴 상인들이 왕후에게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맡겼다고 한다.

 

왕비와 시녀들은 동망산 계곡 곳곳에 있는 자줏빛 풀을 따다 옷감에 물을 들이고, 자지동천에 빨아 생계를 유지했다.

현재는 샘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지만, 왕비와 시녀들이 물들인 옷감을 널어 말렸던 바위에는 '자지동천'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종로구는 서울시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표 여인상으로서 정순왕후를 브랜드화 하겠다는 포부로

8억 8천만 원을 들여 정통 궁중 뮤지컬 <妃‧愛‧悲>를 자체 제작했다.

  

종로구 숭인동 청룡사, 동망봉, 청계천 영도교...

 

영도교(永渡橋)는 단종과 순정왕후가 ‘영영 이별한 곳’이라 영도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이 다리는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새로 놓은 것임).

동망봉(東望峰)은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날마다 동쪽을 바라보며 곡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여

후에 영조대왕이 지은 이름이고, 단종이 사약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자 그녀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 절이 청룡사라 한다.

 

종로구는 지하철 6호선 창신역을 정순왕후 테마 역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한다.

이병호 종로구 문화공보과장은 "이달 중순부터 창신역사 지하 1층 대합실 벽면에 정순왕후 유물을 전시하고

추모제와 뮤지컬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며 "정순왕후 유적지 탐방코스도 소개하고

정순왕후· 단종 부부의 모습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매년 봄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문화제'도 열린다.

올해는 23~25일 숭인동 동망봉(숭인공원)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펼쳐진다.

23일에는 정순왕후의 명복을 기원하는 추모제향과 정순왕후 선발대회, 24일에는 청계천 영도교에서 정순왕후와

단종의 이별 재연, 25일에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이들이 넋이라도 만나 한을 풀라는

'청령포 해후' 행사가 열린다.

특히 '정순왕후 선발대회'는 여고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니, 많이 참여하여 추억을 쌓는 것도 좋을 듯...

   

요즘 우리나라에서 부부사이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혼하는 커플 숫자가 세계 1, 2위를 다툰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정순왕후의 곧은 절개와 한 지아비만을 그리는 충절은

젊은이들에게 뭔가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게 틀림없다.

 

‘64년간 홀로 절개를 지킨 정순왕후의 애절한 이야기가 깃들인 종로구의 명소들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녀의 절개가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할 것‘이라는 종로구청장(김충용)의 말대로,

뮤지컬 <妃‧愛‧悲>가 부부간의 깊은 사랑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공연시간정보

2010년 4월 8일(목) ~ 4월 20일(화)

평일: 저녁8시 / 토: 15시, 19시 / 일: 14시, 18시

연출: 홍사인

출연 : 오진영, 선영, 신유, 허순미, 강지연

 

공연장소 :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대학로) (혜화역 1번 출구)

 

주최: 종로구

후원: 서울시

문의: 02-731-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