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문학 평론가, 황현산 '나를 위한 열 개의 글쓰기 지침'

릴리c 2018. 8. 12. 23:18



8일 타계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 시대 문학인들과 독자들의 사랑을 고루 받은 희유한 비평가였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탁월한 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될 그는 어떻게 글을 썼을까. 생전의 그는 계간 ‘21세기문학’ 2014년 봄호(통권 64) 인터뷰에서 나를 위한 열 개의 글쓰기 지침을 밝힌 바 있다. 열 개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문장을 쓴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면 써야 할 글에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문장이 생각을 만들어가게 한다. 첫 문장을 잘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리듬이 살아야 한다.

 

호흡이 좋아야 글이 명료하다. 글 쓰는 사람은 자기 호흡으로 글을 쓰겠지만 독자들이 모두 그 호흡으로 글을 읽어주는 것은 아니기에, 거기서 자주 오해가 생긴다. 특히 긴 문장을 쓸 때는 여러 가지 호흡으로 글을 읽어보고 낱말의 위치를 바꾸거나 조사를 바꾸어 호흡을 조정한다.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명료하게 읽혀야 잘 쓴 것이다. 구두점을 잘 이용한다. 구두점은 독자를 강제로 쉬게 한다.”

 

상투어구, 상투문을 피해서 글을 쓴다

 

글을 쓴 다음, 늘 하던 소리다 싶으면 지운다. 상투어구는 생각을 안 하거나 생각을 미진하게 했다는 증거이며,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우고 다시 쓰다 보면 생각이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가짜 생각진짜 생각이 구분된다. ‘허위의식이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의식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되도록 의성어, 의태어도 쓰지 않는다.

 

가능한 의성어, 의태어를 피한다. 의성어, 의태어는 문장에 활기를 주는 듯하지만, 자주 내용의 허술함을 감추어주기에 쓰는 사람까지 속을 수 있다. ‘닭이 울었다고 쓰면 되지 닭이 꼬기오 하고 울었다고 쓸 필요는 없다.”

 

팩트 간의 관계를 강제하지 않는다.

 

접속사 등으로 팩트를 강제로 묶으려 하면 글이 담백함을 잃는다. ‘태극기가 펄럭인다. 오늘은 3·1절이다하면 상황과 인과관계가 모두 전달된다. ‘오늘은 3·1절이기 때문에 태극기가 펄럭인다같은 문장은 독자를 바보로 취급하는 셈이 된다.”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으로 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가들이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짧은 문장이 반드시 좋은 문장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긴 문장을 쓸 만한 내공이 없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생각을 섬세하게 드러내려면 긴 문장이 필요한데, 긴 문장을 잘 쓰려면 자꾸 써봐야 한다. 짧은 문장을 많이 쓴다고 긴 문장을 잘 쓰게 되지는 않는다. 문장을 잘 쓴다는 건 긴 문장을 명료하게 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형용사의 두 기능인 한정과 수식을 구분해야 한다.

 

글을 쓸 때, 형용사를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형용사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수식, 다른 하나는 한정이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식 기능의 형용사는 줄일 수 있지만 한정 기능의 형용사를 없애면 모호한 글이 된다. 글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적절한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표헌에 자신감이 붙게 하는 것도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속내가 보이는 글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자기 자신을 잘 고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면 좋은 글이 된다. 그런데 속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속이 보이게 쓰면 안 된다. 속을 드러내는 것과 속 보이게 쓰는 건 다르다. 글로 이익을 취하려 하거나 사태를 왜곡하면 속 보이는 글이 나온다. 속 보이는 글은 사실 자기 속내를 감추는 글이다.”

 

한국어에 대한 속설을 믿지 않는다.

 

한국어는 구두점이 필요 없다거나 한국어는 사물절을 쓰지는 않는다는 등의 한국어에 대한 속설이 많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서양에서도 구두점은 16세기 이후에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요순시대의 말로 남아 있게 할 수는 없다. 사물절을 쓰지 않는 건 한국어의 어법이 아니라 한국의 풍속일 뿐이다. 모든 풍속이 미풍양속은 아니다. 토속적인 말투를 질펀하게, 실은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글들이 있는데, ‘보그 병신체’, ‘박사 병신체와 맞먹을 토속어 병신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피해야 할 것은 낯선 어투가 아니라 상투적인 어투다.”

 

문장이 가지는 실제 효과를 생각한다.

 

말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리듬도 좋은데 감동이 없는 글이 많다. ‘작은 눈도 크게 뜨고 좁은 길도 넓게 가자.’ ‘운전은 경주가 아니다.’ 두 개의 문장이 모두 교통안전 표어인데 어느 쪽이 효과가 있을까. 글의 효과와 설득력은 대체적으로 사실성에서 온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