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30년 전의 쪽지

릴리c 2008. 12. 15. 23:23

 

 

비 오시는 날

 

어느 날엔가

진한 커피 내음 너머

부드러운 머리칼을 적시고 온

내 영혼과의 만남

 

겨울비를 맞아

전신은 진달래로 가득하고

초록빛 어항 속에 바람이 분다

 

 

 

 

조그만 찻잔에

샘처럼 고이는

마음,

마음...

 

온 날을 달려와

사랑이 고인

한 잔의 차와 만난 것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신의 축복이어라

 

비에 젖은 당신의 머리칼

내 깊은 가슴에 담아 그대의

빛나는 내일이기를

기도해야지

 

언제나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비 오시는 날은

더욱

더욱...

 

JAN. 29. '79      꽃님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겨울비가 몸과 마음을 시리게 만들던 1월,

그와 난 데이트 주종목이던 '영화관람'을 위해 티켓을 예매하고

시간이 남아 극장 주변의 찻집에 들어갔다.

'다방'이라 불리는 그곳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뭔가 끄적거렸고...... 그 작은 메모지가 최근에 나를 찾아왔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다방' 풍경,

모양 없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홀 중간 쯤엔 어김없이 네모난 어항이 있다.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구경하는 것도

그 땐 한 재미 더했다.

 

우리가 골라 들어가는 곳은 '음악다방'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다.

한 쪽 벽면 가득 LP판이 꽂혀 있는 부스에서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심신을 달래던 시절...

영화시간을 기다리며 신청해 듣는 음악은

그야말로 데이트족을 더 친밀하게 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겨울비를 맞아 전신은 진달래로 가득하고...'

 

음악에 묻힌 빗소리를 느끼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었던 그때의 마음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비록 유치하기조차 한 글이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은 마음이 담겨 있으니

내겐 너무나도 소중한 흔적이다.

 

우린 결혼했고,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그 당시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중년의 나이에 와 있다.

 

어지럼증이 일 것만 같은 굉장한 속도로

1년... 10년이 저 앞을 향해 내달린다.

 

벌써 올해도 다가고 12월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

해마다 이맘 때면 걸리는 '회한증'이

다시 꿈틀대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잃어버린 게 더 많은 시간이었는지

남은 게 무엇인지

손익계산서를 따지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버리는 연습,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는다.

찾아온 고통을 감내하는

眞, 善, 忍은 우주의 이치.

나는 우주와 자연과 하나 되는 연습을 한다.

 

 2008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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