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취집 할래요

릴리c 2009. 2. 10. 15:58

취집 할래요


  요즘 심심치 않게 접하는 말 중에 ‘취집’, ‘취장’이란 단어가 있다. ‘취직'과 '시집(장가)'의 합성어로, 취업이 힘든 여성(혹은 남성)들이 취직 대신 결혼을 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최근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결혼정보업체를 찾는 젊은 여성들이 크게 늘어나는 반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결혼을 미루는 예비부부가 생기는 등 결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기사나 방송이 자주 눈에 띤다.


  결혼정보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IMF 외환위기 직후였다고 하니, 경제적 어려움과 결혼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다. 하긴 예전에도 취직 못한 여성이 결혼하면 ‘영원한 취직’이라는 말로 은근히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황일수록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보니 안정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실제로 결혼정보업체 가입자의 70%가 부모세대인 만큼 결혼 풍속도가 바뀌긴 한 모양이다. 가입자 연령층도 대학생으로 상당히 낮아진 것을 보면 취업난의 심각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러나 한 편으론, 서로 맞벌이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취집’이나 ‘취장’만으로는 답답한 현실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듯하다. 안정된 직장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대를 찾기 위해서는 본인 역시 그에 상응한 ‘자격’을 갖춰야 함은 기본일 터, 앞날이 창창해야할 젊은이들의 미래가 이래저래 불안한 현실이다.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하여 나보다 훨씬 나은 상대를 만날 거라 기대한다면 이 역시 몽상이 아닐까. 상대방 역시 같은 생각에 등록했을 터이니 말이다. 결혼정보회사의 요구사항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모양이다. 부모의 재산이나 직위, 결혼할 본인의 직장, 학력, 소득, 자가용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지고 점수를 매겨 비슷한 수준을 찾아 소개시켜 주는 모양이다. 그러니 나보다 나은 상대를 만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옳지 않을까.

  그러나 검증된 이성을 소개받는다는 점과 매칭하기 전 서로에 대한 정보를 미리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백수, 이태백, 삼퇴백(30대에 퇴직한 백수), 88만원 세대(20대 근로자의 95%가 평균 임금 88만원의 비정규직으로 편입), 고공족(고시족+공시족),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공휴족(쉬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사람들), 장미족(장기 미취업 졸업생), 구직 증독증(취업 후에도 습관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증상), 조기(조기 퇴직), 명태(명예 퇴직), 황태(황당하게 퇴직), 동태(한겨울에 명퇴), 알밴 명태족(퇴직금 두둑히 받은 퇴직자), 생태족(해고 대신 타부서로 전출 당한 사람), 체온퇴직(직장인들이 인식하는 체감 퇴직연령인 36.5세가 인간의 체온인 36.5도와 같다는 의미), 삼팔선(38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선방했다는 의미)’ 등, 심각한 불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용어가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넘쳐난다. 게다가 백수소설, 백수문학까지 등장한 현실이다.


  산과 들의 메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는 계절, 우리의 경제에도 물이 오르고 파릇한 싹이 돋아나기를 빈다. 머지않은 장래엔 이런 신조어가 사라지고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용어로 남을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취업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암울한 상황에서 취집이나 취장이 마음먹은 대로 이뤄질 수 있는 사회,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는 사회가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