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도쿄의 여름 | |||||||||||||||||||||
( 蒸し暑い 무시 아쯔이) 일본의 찜통더위 | |||||||||||||||||||||
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또 얼마나 견디기 힘든 더위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대체 이 나이에 왜 여기 와서 생고생인가, 후회도 스쳤다. 떠나기 전의 ‘야무진 각오’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지인들의 소식에 애타하기도 했다.
시작으로 헌법기념일, 노동절, 녹색의 날, 어린이날이 휴일이고 중간에 끼인 날까지 휴가를 내면 거의 열흘 정도를 쉬는 그야말로 황금연휴가 존재한다. 게다가 얼마 후 장마철이 되었는데도 비구경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저 뙤약볕만 내리쬐더니 급기야 더위를 이기지 못해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뉴스까지 보도되었다. 연일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게 보통이었다.
도쿄는 그러잖아도 한국보다 높은 습도와 기온 때문에 불쾌지수가 하늘을 찔렀는데, ‘90년만의 무더위’였다고 하니 그 끔찍함이 최악이었다. 내리쪼인다. 하루 6~7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책과 도시락이 든 무거운 배낭 때문에 어깨엔 진작 피멍이 들었고, 커다란 물병(여름엔 필수다!)은 이미 바닥난 상태. 얼마쯤 가다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면 아무 가게나 들어간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가게 안을 둘러보며 땀을 식히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면 견물생심.
(교토 청수사의 높은 난간에서 뛰어내린다는 각오로 무슨 일을 추진한다는 뜻. 그만큼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가게 문을 나선다. 확실한 ‘찜통’을 절감한 건 그 때가 처음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蒸し暑い(무시아츠이-푹푹 찌듯이 덥다)라는 표현을 쓰는가 보구나. 아님 내가 느끼는 체감온도가 높았던 걸까? 기후가 몸에 배어서 그렇겠지만 아마도 그들에겐 참을성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기다리면서도 짜증내지 않는 인내심. 차례가 되어 주문한 라면 한 그릇은 꿀맛이었으리라(솔직히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래서 남을 배려해야 함을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익히는 그들. 남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해 자신의 불편함을 내색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그들. 싫다, 나쁘다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좋지 않다’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그들. 예스나 노 대신 ‘생각해 보겠다’고 하는 그들(예전에는 그 표현 때문에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예스’로 착각해 곤혹을 치렀다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생각해 보겠다’고 하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
‘다테마에(立前;겉으로 드러내는 표현)를 빼곤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이 말하는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그랬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니 한국에서 슈퍼마켓은 물론이고 가까운 곳에도 거의 차를 끌고 다니던 내가 하루에 보통 1시간 이상 걸으면서, 집에 돌아가면 자전거도 배우고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자, 단단히 결심했었다.
그때 내 양말은 구멍이 나서 버린 게 수도 없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 양말 얘기를 하니 남편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그 때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남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짧지만 굵었던 유학생활이었다고 자부한다. ‘까이꺼~! 덤빌테면 덤벼봐~!’ 하는 마음으로 여름을 맞고 있다. 8년 전의 ‘예방주사’ 효과가 아직 남아있기를 빌면서….
(이미지 : 단양 온달관광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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