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포 왜성(西生浦倭城)
큐슈 구마모토 성의 모델이 되었던...서생포 왜성(倭城)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53년(선조 26년) 5월부터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하여 40일만에 돌로 쌓은 일본식 평산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 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가토 기요마사는 고향에 돌아가 구마모토(熊本) 성을 지을 때
서생포 왜성을 토대로 더 굳건하고 웅장하게 지었다고 하니, 이곳이 결국 구마모토 성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발 200m 산꼭대기에 본성[本丸]을 두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중간 둘레에 제2성[二之丸], 가장 아래에 제3성[三之丸]을 두었다.
성벽의 높이는 6m, 기울기는 15도로 성의 전체 모습은 직사각형이다.
본성에는 장군 처소인 천수각(天守閣)과 우물인 장군수가 있었다.
그 밑으로 산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외성(外城)을 계단식으로 배치해성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어 놓음으로써, 각각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는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성벽 밖에는 2중 3중으로 해자를 두기도 해 16세기 말 일본 성곽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1594년(선조 27년)부터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 평화교섭을 하였고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아래에서부터 줄곧 이런 돌 성곽을 쌓았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아 16세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저 많은 돌들을 꼭대기까지 운반하는데 병사들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동원되었다고 하니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을 지 짐작이 된다.
이곳(위 사진) 조금 못미친 곳에서 만난 바위 한 개(아래)에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193'이라는 숫자를 보며 의견들이 분분하다.
왜성을 쌓다가 공사 중에 숨진 백성들의 숫자라느니...이곳을 오르며 '숫자바위'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정상 가까이에서 올려다 본 왜성 축대.
저 곳에 오르면 산꼭대기라고 믿기 어려운 넓은 터가 나온다.
왜군 장수의 거처였던 '천수각'이 있던 자리.
지금은 허물어진 돌무더기와 터가 남아 있다.
1598년 명나라 마귀(麻貴)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다시 빼앗았고,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53명의 충신들을 기리기 위해 창표당을 세웠으나 지금은 역시 터만 남아 있다.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있고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성터 빼곡히 벚나무가 심어져 있으니봄이면 산정상에 만개한 벚꽃을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듯 하다.
출격용 소곽(小郭)
이 소곽은 배후의 주곽(主郭)을 방어하고
군대의 출전시 그 움직임을 은폐, 보호함으로써 안전한 출격을 도모하기 위한 시설이다.
가파른 지형을 깎아내 평지를 만들고 계단처럼 돌을 쌓아 이용했던 옛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니 진하해수욕장이 바로 발 아래 있는 듯 가까이 보인다.
그림처럼 떠 있는 명선도. 밤이면 조명이 들어와 환상의 섬이 되고...해발 200m 정상에 이런 넓따란 공간이 있을 줄이야.(아래 사진)
고르게 펼쳐진 땅바닥에는 나무뿌리가 밖으로 솟아올라와수백년 역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자연이 훼손됨에 따라 우리 땅에서 두꺼비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난 두껍 군, 징그럽기는 커녕 오히려 반가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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