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동유럽

중세도시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신혼부부의 자전거 세리모니

릴리c 2011. 7. 20. 08:30

하이델베르크 구지가지 광장의 신혼부부,

                                     깡통 매단 자전거 타고 세리모니

 

동유럽 여행의 마지막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하이델베르크 시는 독일에서도 유서 깊은 중세도시로 여행객들이 꼭 가고 싶어하는 도시이고,

구시가지를 굽어보는 하이델베르크 성(城)이 영욕의 세월을 간직한 채 말없이 서 있는 곳이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으로 그들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독일1위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있는 도시이며, 칸트괴테를 비롯한 세기의 철학자와 문학가들이 사색하며 산책하던 오솔길,

'황태자의 첫사랑' 배경지가 곳곳에 있는 도시......

 

오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의 몇 시간을 보낸 곳이어서 많은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 동안의 여정이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하일라이트는 고성(古城)을 둘러보는 것이겠지만, 내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으로 각인된 장면이 있다.

고성을 보고 내려왔을 때 만난, 구시가지의 시청 광장을 자전거로 달리던 신혼부부가 바로 그

'풍경'이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보고 내려오니 마침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랑신부가 자전거를 함께

타고 광장을 한 바퀴 돈 다음이었다. 아, 좋은 광경을 놓쳤구나 싶어 아쉬운 마음에, 자전거에서 내리려는

그들에게 나도 모르게 '당돌한' 부탁을 했다. "Kiss, Please~!!" 했더니 오모나~ 정말로 키스를 하는 게

아닌가~!! 축하한다는 한마디와 함께 내친 김에 "한 번만 더 돌아주세요~ 플리즈!" 하고 또 부탁을 했다. 

신랑신부는 활짝 웃으며 다시 자전거에 오르더니 찌그러진 깡통을 짤랑거리며 광장을 돌기 시작했다.

나는 힘찬 박수로 그들의 출발을 축하했다. 좀 나이 든 신랑신부는 이미 뱃속에 '선물'을 품고 있었다.

"잘 사세요~~!!!"

동양 여행객의 진심어린 축복을 받으며 그들은 자리를 뜬다.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가족들.

하이델베르크의 평범한 시민을 보는 느낌은 너무나 따뜻하고 보는 나까지 행복해졌다.

새롭게 가정을 꾸리는 신혼부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듯 기뻐하는 저들의 표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혼부부의 자전거 세리모니가 있었던 이곳은 구시가지의 마크트 플라츠(시청 광장)이다.

중앙의 큰 건물은 성령교회인데, 1398년에 짓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완공되었다. 교회 안 성단에는

선제후들의 무덤이 있으며, 원래 카톨릭 교회였지만 구교와 신교가 번갈아 가며 교회와 성당으로

사용, 지금은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시청사는 사진 찍는 내 뒷편에 있다.

 

 

자, 이제 슬슬 고성을 향해 올라가 볼까 한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하이델베르크 성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보이지만 완성된지 400년이 넘은 고성으로 일부를 제외하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청 광장에서부터 걸으면 10분 정도에 오를 수 있지만 푸니쿨라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계단과 언덕을 지나 성에 도착하는 쪽을 택했다. 수백 년은 되었을 좁은 골목길의

풍경은 나에게 ‘선물’이 되어주었다.

하얀 글씨로 계단 숫자를 표시한 것도 재밌지만, 고성 마을답게 주변의 오래 된 아름다운 집들과 이끼

낀 붉은 벽돌담을 구경하면서 오르는 즐거움은 이곳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집 빨랫줄에 널린 '양말 부대'는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오르던 내게 유쾌한 추억을 주었고,

그 옛날 귀족들이 살았음직한 멋진 건물들은 나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언덕을 오르다 간간히 뒤를 돌아보면, 붉은 지붕의 집들과 네카 강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했다.

 

 

수백 년 되었을 좁은 골목길은 계단과 언덕으로 되어 있다. 계단에 쓰인 하얀 숫자는 '315'에서 끝난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담들은 오래 된 듯 이끼가 가득하지만, 그 마저도 운치 있는 멋스러움으로 느껴져

걸어 올라가는 게 오히려 즐겁다. 

 

 

 

보통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린다는 골목길을 사진 찍으며 때때로 뒤돌아 보기를 되풀이 하며 걸으니

15분 쯤 걸려서 성에 도착했다. 성의 입구를 지나 맨처음 만나는 문이 바로 '엘리자베스 문'이다.

프리드리히 5세가 영국에서 데려온 아내 엘리자베스를 사랑해, 그녀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루 만에 지어

선물했다는 문인데, 정교한 조각과 규모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이 문 앞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랑이 이뤄지기도 했는데, 예순이 넘은 괴테가 30대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곳이기도 하다니, '엘리자베스 문'이 아니라 '사랑이 이뤄지는 문'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의 힘은 정말 마술 같다^^*

 

 

 

네카 강에서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하이델베르크 성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 있다.

1600년대 말, 프랑스에 의해 파괴되고 1764년에는 벼락을 맞는 등 '비운의 성'이기도 한데

이곳에 오르면 일단 테라스에서 시내 전경을 봐야 한다. 주황색 지붕이 너무나 아름다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네카(Necker)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었고, 강을

잇는  테오도르(Karl Theodor)다리도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이 이곳이 최고의 뷰포인트인 것

같다. 칼 테오도르 다리 저쪽은 '철학자의 길'이 있다는 신시가지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여기 보이는 건물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 때 파괴된 모습이다. 프랑스

군대가 이곳을 점령하고 파괴했지만,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기도 도시의 아름다움에 폭격을

포기했다는 하이델베르크 성, 일부 파괴는 되었으나 그 상처와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아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 성을 제대로 보려면 건너쪽으로 가서 온전히 남은 건물을 봐야 하는데

그냥 이쪽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성이 비록 파괴된 모습이긴 하지만 로맨틱하게 보이는 까닭은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배경무대였던

곳이라서일까. 또한 이곳에서 사랑에 빠진 괴테의 심정을 담은 시의 한 구절이 성 안 정원 어딘가의

시비에 새겨져 있어서일까.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Hier war ich gl cklich, liebend

und geledt)' -괴테-

 

 

 

구시가지의 시청사와 광장이 보이고 그 뒤로 칼 테오도르 다리가 네카 강 위에 그럼처럼 걸쳐 있다.

아래 사진 속엔 시청 광장의 성령교회가 시선을 붙잡는다. 붉은 지붕의 집들 사이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지만...... 조금 있으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야 한다...ㅠㅠ

 

 

 

위에서 내려다 보이던 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다. 그곳엔 '철학자의 길'로 알려진 산책길이

마을 옆으로 나있다. 일단 다리를 건너기 위해 광장을 지나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간다. 흰색 기둥 두 개가

나란히 다리의 '입구' 역할을 하는 곳에 이르렀다.

 

 

 

정식 명칭은 칼 테오드르 다리(Kari Thedor Brucke)지만 안내판에는 '옛 다리(Alte Bruecke)'라고 적혀

있다. 칼 테오도르가 1786-1788년에 개축하여 이 다리의 본래 이름은 칼 테오도르 다리이지만 시민들은

그냥 옛 다리(舊橋)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다리위에는 이 다리를 만든 테오도르 상과 여신 아테나상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성의 경관

역시 일품이다. 또 다리의 입구에 있는 흰색의 쌍둥이 탑문은 외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로, 마을 옆으로 나있는 산책길이 바로 '철학자의 길'이다.

 

 

 

다리 중간에 서 있는 조각상이 칼 테오도르.

네카 강은 독일의 기적을 가져다준 라인 강의 지류로, 아름다운 중세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품어 안은 형상으로 수많은 영욕의 세월을 간직한 채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헤겔, 야스퍼스 등  세계 최고의 철학자와 괴테칸트, 괴테, 쉴러 등 

문호들의 흔적과 일화로 여행객들에게 정신적인 휴식을 주는 중세 도시다. 칸트는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같은 길을 산책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마을 사람들은 그가 다리를 건너면 시계를 12시에

맞추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는 '학생의 도시'로 알려져 있을 만큼 인구 14만 명 가운데 학생이 3만 명이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7명이나 배출된, 독일 최고의 대학으로 꼽힌다.

<황태자의 첫사랑> 무대가 된 곳도 이 대학으로, 왕위 계승자 칼 프란츠가 이 대학의 학생이 되어

평민 출신 여성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영화촬영, 실제로는 헐리웃에서 이뤄졌다.

문득 우리나라의 <임금님의 첫사랑>과 오드리 햅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이 떠오른다.

 

 

칼 테오드르 다리 입구에 있는 원숭이 동상.

원숭이가 들고 있는 것이 청동거울인데, '욕망의 덩어리인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라'는 뜻과

사람들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원래 이 동상은 15세기엔 강의 북쪽 탑 근처에 있던

것이 17세기에 없어진 것을 근세에 다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원숭이가 들고 있는 거울을 들여다 보면 나쁜 사람을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옛날부터 하이델

베르크에는 나쁜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요즘은 이 원숭이이 거울을 만지면 행운과 지혜를 얻는다고 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명물이 되었다.

 

 

고성 아래 골목에서 만난 풍경들.

노천 카페와 거리 상점의 물건들에서 하이델베르크의 추억을 담으려 한다.

아래 보이는 머그컵이 마음에 들었지만 싼 것도 45유로를 넘는 가격이어서 포기했다. 아무리

수제품이라도 그렇지...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나니 점심시간. '한국관'이라는 한식당을 찾아가는 골목에 들어서자 아까 만났던

'신혼부부의 자전거'가 길 한 켠에 서 있다. 반가움에 찰칵~^^

그런데... 한식당 바로 옆에 '황태자의 첫사랑' 주요 무대였던 주점 '붉은 황소(Gasthof zum Roten Ochsen)'

가 있었다. 건물 역시 붉은 색이었는데 외부에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앞에 서니 '축배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주점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목청 높여

"Drink! Drink!"를 합창하며 맥주잔을 높이 치켜들던 모습...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학생 신분이던 황태자가 고성(古城) 아래의 주점에서 첫사랑을 만나는 로맨틱한 얘기가

지금 다시 시작될 것만 같은 바로 그 주점 '붉은 황소'. 나는 그 앞에서 예전의 낭만을 느껴본다.

1703년에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젠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이번 여행을 돌아보니, 온통 아쉬움 뿐이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보려는 욕심 때문에 결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어쩌면 시간 낭비는 아니었을까, 반성과 함께 다음 여행을 꿈꾼다.

여행은 늘 아쉬움의 연속이므로......

 

 

그동안 동유럽 여행기에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