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마리엔 광장에서 만난 말괄량이 삐삐 소녀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의 분위기는 앞의 두 나라와 확연히 다른 '독일답다'는 느낌이 강하다.
도심에 진입하면서 만난 건물들에서 절도 있는 딱딱함이 느껴져서였을까, 아니면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고정관념(검소, 수수함, 무표정, 나치, 히틀러, 절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고정관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따듯하고 생기 넘치는 뮌헨으로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도시가 됐으니까.
뮌헨의 딱딱했던 첫 인상을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로 바꾸게 해주는 데 이 소녀도 한 몫했다.
신시청사를 찍기 위해 몸 사리지 않는 포즈로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던 그녀는 정말
예뻤다. 찍은 사진을 보며 즐거워 하는 모습은 미인대회 입상자의 미소보다 더 아름답고 순수해
나 역시 미소가 절로 나왔으니...
하이델베르크에서 왔다는 그녀의 메일주소와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이제야 살짝 후회가 된다.
동양의 여행객으로부터 이 사진을 받으면 즐거운 추억과 함께 한국이라는 나라를 기억하게 됐을
텐데... 그 당시엔 일정에 쫓겨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으로 돌리면서 다음엔 꼭 후회하지 않는
여행을 다짐해 본다.
요즘 젊은(어린) 친구들은 삐삐 소녀를 알고 있을까.
뮌헨 신시청사의 종탑 아랫부분에 있는 '인형들의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만난 소녀다. 어멋~!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말괄량이 삐삐'를 꼭 빼닮은, 허공으로 뻗친 양갈래
머리가 다소곳이 어깨 위로 드리워진 것 말고는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이었다.
어릴 때 TV 속으로 빨려들어갈 만큼 좋아하던 '삐삐' 시리즈의 주인공 소녀가 내 눈 앞에 나타나다니~!
앞뒤 볼 것 없이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보니 이렇게 나왔는데, 자신이 찍히는 걸 알면 화를
낼까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눈치를 슬슬 보며 단 두 컷 누르는데 그치고 말았다.
잠시 동안 행복한 추억 속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던 소녀.
"삐삐야~ 만나서 반가웠다~!!"
여행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여행자는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작은 것 하나라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마음. 눈과 마음에 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늘어나는 추억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은
곳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지구촌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그들과 공통된 정서를 갖는다는
것 역시 삶의 작은 기쁨이다. 세월의 흔적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노부부에게서 나는 또 하나의 행복을
본다.
뮌헨 중심에 있는 마리엔 광장의 신 시청사는 얼핏 구시가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옛스러움'을
자아내지만, 완성된지 100년밖에 안 되는 '새건물'이다(1867~1909에 지음). 유럽에서 보는 건물
들은 대부분 수백년, 길게는 천 년을 훨씬 넘은 게 보통인 탓에 100년 쯤 된 것은 '새건물'에 속한다.
건물 벽면 곳곳에 천사와 사람들 모습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특히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인간의
표정에서 현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느끼게 한다. 신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실제로 구 시청사는 따로 있다. 신 시청사 앞 광장(마리엔 광장)의 오른 쪽에 붉은 지붕의 건물이 바로
구 시청사↓. 1310경에 착공된 건물로 2차대전 중에 파괴되어 1950년 새로 지어졌다. 지금은 장난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시청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글로켄슈필이라는 인형시계 종탑이다.
종탑 높이는 85m에 이르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뮌헨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종탑에 달려 있는 시계와 탑 중간 쯤에 자리한 글로켄슈필의 인형이 이곳의 명물인데 정해진 시각에
종소리와 함께 실제 사람 크기만한 '인형들의 공연'이 10여 분 동안 펼쳐져 우리를 어린시절 동화의
나라로 안내한다. 맑게 울려퍼지는 종소리에 내 마음까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아래 사진) 신시청사 앞의 마리엔 광장은 전통과 문화, 젊음이 살아 숨쉬는 열린 공간이다.
한쪽에선 판토마임이 진행되기도 하고 다른 쪽에선 특별공연을 위한 무대가 준비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여행객 외에도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문화를 즐기며 세계 속의 '나'와
'우리'를 조금씩 깨달아간다.
신시청사 앞에 우뚝 서 있는 금빛 조각상은 성모 모자상.
신 시청사 앞 마리엔 광장의 풍경들.
노천 카페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즐기며 담소하는 모습, 거리의 광고보드, 광장 한 켠의
꽃집 앞을 서성이는 중년 여성의 모습에서 지구촌은 하나임이 느껴져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기도 했다.
뮌헨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독일답다'는 생각은 아마도 거리의 이런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나의 생각은 곧 사라지게 된다.
뒷골목의 따뜻한 색깔의 건물에서, 광장에서 만난 예쁜 소녀들에게서, 생기 있고 환한 시민들 표정...
독일은 결코 딱딱하거나 엄숙한 도시가 아니었다.
큰 길 안쪽 골목에서 만난 건물의 노란색은 여행의 피로가 절정에 달한 나를 포근히 어루만지듯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밝고 따뜻한 색깔 속에 사는 그들의 마음이 어찌 경직될 수 있을까.
차를 타고 지나다 찍은 것인데, 광장에 보이는 동상 역시 막시밀리안이라고 한다.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동상 중 하나.
서로를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목에 노란 스카프를 두른 단체 여행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유럽의 단체 여행객들 중에는 젊은이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우리와 달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
들이 유난히 많았다.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하우스↑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극장이다. 오페라 하우스 앞의 넓은 광장이 바로 막스 요제프 광장이고 앞에 보이는 동상은
뮌헨을 다스리던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59.3.22 ~ 1519.1.12)로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뮌헨 시내 곳곳에서 막시밀리안의 동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옆으로 보수공사가 한창인 뮌헨 레지던트 궁전↓이 보인다. 실물처럼 그려진 가림막이
얼핏 봤을 때는 실제 궁전의 모습인 줄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1385년 이후 바이에른
왕가와 비테르스바흐 왕가의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천 카페는 어느 곳이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노천 카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울 텐데...
오스트리아에서처럼 뮌헨 역시 시내 곳곳에 공원이 많았고, 거기엔 어김없이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런 풍경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스쳐지나야만 하는 것도 커다란 아쉬움으로...
동유럽 여행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내일이면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는 '독일 맥주'로 여행을 마무리 한다. 우리가 들어간
호프집 정원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찼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삼아 호프집에 들러 이웃들과 정담
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맥주의 나라'답게 뮌헨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16일 동안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여는데,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불린다.
독일의 맥주가 세계 최고의 맛으로 군림한 데는 그들만의 비결이 있다고 하는데, 다름아닌 '원칙을
지키는 장인정신'이라고 한다. 5백년 전의 유럽은 물이 오염되어 마음놓고 마실 물이 귀했던 탓에
맥주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래서 빌헬름 4세가 1526년 최초로 맥주순수령을 발포,
대맥, 호프, 물의 세 가지 원료 이외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았다.
이로써 맥주의 품질유지와 향상에 이바지 했고 그것이 오늘날 독일 맥주를 세계 최고로 만든 계기가
된 것.
다음은동유럽 마지막 여행지,
황태자의 첫사랑을 간직한 하이델베르크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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