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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보수동 책골목

릴리c 2012. 1. 21. 08:30

로의 시간여행,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걷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은 총알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1년이... 10년이... 몇 번 자고 일어나니 지나버린 것만 같고, 기억력도 총명함도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 "나이가 들면 우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자꾸만 되새기게 된다.

흐려지는 기억력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목에, 손에, 등줄기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살아보는 것도 어찌 보면 세상과 손잡고 살아가는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숨가쁘게 달리느라 제대로 보지못했던 귀한 

것들이 또렷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해 연말이 가까울 무렵, 부산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젊은 시절에 두번 정도인가 갔던 게 전부인 부산여행.

불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저 발길 닿는대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남편과 나는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부산역에서 내리자마자 부산의 이미지가 강한 '자갈치 시장' '국제시장'을 둘러본 다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보수동 헌책방 거리로 발길을 옮긴다.

 

 

길거리에 쌓인 책들과 보도에 새겨진 책 제목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이미 과거 속으로 불러들이다.

나 역시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은 채 세월 저 편으로 걸어들어가 본다. 

젊은 날, 나를 키우고 꿈을 꾸게 했던 수많은 책들과 사연들이 아직 저 책갈피 안에 고이고이 담겨

있으려나... 문득 책 하나 집어들어 아무데나 펼쳐보고 싶어진다. 

내가 꾸었던 꿈이, 나를 아프게 했던 갈등과 수많은 고민들이 툭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때는 왜 모든 것이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왜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방황하는 젊음을 바로 잡아주고 길을 안내해 주었던 책 속의 수많은 글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많은 책을 읽으며 지낸 그때가 참 행복한 시기였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나는 추억 속으로 계속 걸어들어간다.

 

 

 

 

 

부산역에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한 후 길 건너에 있는 '국제시장'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건너면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나오는데,

도로변에 세워진 책 모양 설치물이 '여기가 바로 그곳'임을 말해준다.

이곳은 부산시의 후원을 받아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진 '명소'가 되었다.

 

  

 

골목으로 접어드니

요즘 도시에서는 거의 사라진 '전당포'가 보인다.

헌책방과 전당포, 왠지 묘한 어울림과 애잔함이 느껴진다.

아주 젊은 친구들은

서민과 가난한 학생들의 애환이 서린 

 전당포를 알까.

 

 

이곳에서 30년 넘게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분은,

표준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타지인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전에는 장사가 꽤 잘 됐다고 하는데

요즘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며

그 원인을 '인터넷의 발달'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

인적이 드문 책방 골목을 바라보는 눈길엔

'이젠 장사를 접어야할지...'를 고민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래도 인터넷이 아닌 진짜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하시고, 힘 내세요!"

라는 말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검색으로 자료를 찾는다고 해도

 책에 밑줄 그어가며 읽는 맛을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으니까...

"아주머니, 홧팅~!"^^*

 

 

 

 

 "돼지 의자에 앉아 쉬다 가세요~

우리 천천히 살아요 ~!!" / 학문서점

 

교과서 전문 서점이라는 이곳의 애교 섞인 한 마디에

내 마음까지 활짝 펴지는 것 같다.

"우리 천천히 삽시다 ~~~!!"

 

 

 

책방 골목을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플 때 쯤,

차 한잔 생각이 나면 들러도 좋을 곳.

유리문에 쓰인 글과 OPEN, CLOSED의 시간 개념에서

주인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찻집이다.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가장 오래된 집이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책방마다 들어가 '가장 오래된 집'을 찾으니 대개는

"우리 집도 오래 됐다"며 선뜻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다 드디어 알게 된

진짜 오래된 책방 "학우서림"을 찾았다.

이곳에 문을 연지 57년 됐다는

이곳 주인(김여만 씨, 78세)과 부인(송춘자 씨, 70세)을 만난 것은,

보수동 골목 역사의 한 페이지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가

"책 좋아하는 내가 평생을 책 속에 묻혀 살 수 있으니 큰 행운"이라고 했듯이.

 

 

 

 

 보수동에서 가장 오랜 책방을 알려주신 '단골서점'의 주인 이순희 할머니.

자신의 가게가 몇 년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 못하시면서도

"우리 가게보다 먼저 생긴 집"이라고 '솔직하게' 알려주셨다.

사진을 찍으려니

"아이, 부끄럽게~ 호호호~" 하시면서도 포즈를 취해주신다.

책 값을 일일이 적은 메모지까지 보여주시며.^^*

 

 

 학우서림과 거의 동시대에 문을 연 대동서림과 

56째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만제 씨가 총채로 책에 쌓인 먼지를 털고 있다.

 

 

 

 

 

 

보수동 헌책방 동네를 돌아보고 큰 길로 나오면 사거리가 되는데

거기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국제시장 맞은편 지역으로 '특화구역'이 펼쳐진다.

이름하여 "만물의 거리" "아리랑 거리" "젊음의 거리"다.

골목 어귀에 눈길을 끄는 간판 하나가 보인다.

요즘은 거의 사라진 전파사인듯한 '부산 라디오'.

골목길을 내려가 살펴보려 했으나 문이 닫혀 있다.

아쉬웠지만 지인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머, 안녕하세요?"

하는 반가움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우리에게가 아닌

서로 스쳐지나던 사람끼리의 인사였다.

역시...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부산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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