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인기 DJ 김광한 타계 3주기를 맞아 그의 행적과 음악 여정을 담은 책이 발간됐다. 사진은 2008년 김광한(앞줄 오른쪽)이
'브라더스포'와 '크리스탈 게일'(앞줄 여성)과 함께한 모습. 북레시피 제공
1980년대 FM 라디오 프로엔 양대 산맥이 있었다. 김광한의 KBS '팝스다이얼'과 김기덕의 MBC '두시의 데이트' 였다. 김광한은
국내 1호 팝 음악 전문 DJ 최동욱과 박원웅 이후, 이종환 김기덕과 함께 당대 정상급 DJ로 이름을 날렸다.
김광한은 라디오에서의 인기를 업고 TV에도 진출해 '젊은이의 토요일'에서 '렛츠고 팝스' 코너를 진행했고 코미디 프로
'쇼 비디오자키'에서 진행도 맡았다.
그런 김광한이 2015년 7월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2년, 그의 음악 아지트였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지하실에서
우연히 자서전 유고(遺稿)가 발견됐다. 1만 장이 넘는 LP판과 CD, 음향기기, 낡은 전축과 앰프, 턴테이블, 음악서적과 함께
숨겨져 있던 원고를 부인 최경순 씨가 정리했다. 최 씨는 서문에서 "김광한 타계 3주기를 맞아 남편이 세상에게 들려주려 했던
기록을 출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고 있다.
1980년 4월 DJ 데뷔 방송 모습.
◆'최연소 DJ' 김광한의 불꽃 같은 삶 정리=책에는 김광한이 평생 꿈꾸던 DJ가 되는 과정부터 11년 동안 '팝스다이얼'을 진행하던
당시의 굴곡 많은 이야기와 삶이 그대로 담겼다. 어린 시절 골목대장으로 거리를 누비던 시절, 최연소 팝송 DJ가 되어 방송 생활을
시작하게 됐던 사연, 참혹했던 월남전 참전, DJ를 향해 뜨겁게 정진했던 김광한의 삶이 행간에 녹아 있다.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DJ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이야기는 지난 시절 음악과 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문화의 향기를 뿌린다.
책에는 1970~1980년대 방송가와 현대사 뒷이야기, 풍속도가 함께 펼쳐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시절 추억과 향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당시 인기 절정이던 국내외 최고 팝스타들 모습도 사진으로 수록해 독자들을 당시로 소환한다.
이야기는 갑자기 1980년대 중반에서 멈춘다. 아마 그가 미처 원고를 다 정리하지 못한 채 떠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록하지 못한 그의 다른 시간은 동료들이 채웠다. 박현준 DJ 겸 PD, 정일서 PD, 한용진 DJ, 김목경 기타리스트 등 그와 함께 일한 이들이 김광한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았다.
◆신문배달, 외판원하며 DJ 꿈 키워=책장마다엔 '열일곱 살 아저씨 DJ'로 남고 싶어 했던 김광한의 열정 가득한 삶의 여정이 담겨 있다.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어린 시절 서울 낙원동 골목을 누비던 골목대장 김광한이 DJ가 되기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최동욱의 '탑툰쇼'를 들으며
DJ를 꿈꾸던 그는 병아리 장사부터 은단 판매, 보험회사 외판원, 신문 배달을 하면서도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다방 DJ를 전전하며 레코드 행상까지 했던 일은 음악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러다 마침내 국내 비디오 자키 1호로
자리 잡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팝 문화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이 안정되자 소외된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선 공연을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에 앞장섰고
젊은 음악인들에게는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나는 팝송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을 선도했다고 자부한다. 음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듣고 인생을 얘기하며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은 그들과 거리감 없이 가까워지게 만들었다"고 자부할 정도로 젊은들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4060세대들에겐 휴식 같은 존재=1993년 4월 30일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은 11년 90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는 마지막 곡으로
존 마일스의 'Music'을 틀었다. 그리고 살아온 음악 인생, 삶과 음악에 대한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은 음악을 자주 들을 때
생겨나지 않을까요? 음악을 많이 들으십시오. 김광한은 언제나 '열일곱 살 아저씨 DJ'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1980~90년대 라디오와 TV를 종횡무진했던 그는 현역시절 수많은 팝스타들을 만났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신디 로퍼, 스티비 원더,
듀란듀란과 전설적인 그룹 퀸과 건스 앤 로지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본 조비 등 수많은 팝스타들과 만나 인터뷰를 나누며
그들의 음악을 국내에 알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때 우리의 감성을 자극했던 그가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젊은 시절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80년대 이후와 음악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 많이 아쉽다.
그의 음악프 로에 귀를 기울이며 젊은 시절 그의 목소리에 빚진 세대들에게 이 책은 추억이자 아픔으로 다가온다. 327쪽, 1만6천원.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