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대학 근처 가장 오래된 책방에 가다 | ||||||||||||||||||||||||||||||||||||||||||||||||
도쿄 걷기(2)- 와세다도리(早稲田通り)전통의 자매할머니 책방 | ||||||||||||||||||||||||||||||||||||||||||||||||
스시집 八幡鮨(야하다스시)식당을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할머니 책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소문에, 이곳이 와세다도리(와세다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고 들었는데,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해도 미소는 커녕 잔뜩 경계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천천히 입을 뗀다. “뭐 볼 게 있다고….” JPNews 유재순 편집장의 글 속에 언급된 이 서점에 관심을 가진 건, 고령의 자매할머니(두 분 모두 70대)가 서점을 경영한다는 점과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동네에서 와세다(早稲田) 대학의 역사와 함께한 서점이 현재는 두어 곳 정도 남아있다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땀 흘리며 일부러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친이 책방 ‘다이칸도(大觀堂)’를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인 것 같다고 할머니는 설명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과 동생이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그것도 정확히 몇 년도부터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책방 안쪽에 딸린 작은방에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앉아 있다. 인사를 건네자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온다.
모든 게 오래되고 낡아 세월의 흐름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달리, 비치된 책들은 요즘 나오고 있는 월간지와 주간지가 대부분이었다. 고서(古書)가 즐비할 거라 생각한 내 짐작이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나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고령의 두 할머니로서는 내용도 어렵고 이름도 외우기 힘든 고서를 취급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금세 미소 띤 얼굴로 처음과 달리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해준다. 오히려 어딘가를 뒤지더니 지도를 찾아내 보여주는 적극성을 띠기도 했다. 함께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손님이 책을 사간다. 역시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을 하고 동생이 거스름돈을 챙겨 손님에게 건넨다. 자매가 함께라서 심심치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혹시 두 분은 의견충돌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끔은 싸우시기도(?) 하는 모양이다.
쇼와(昭和)44년(1969년)이라는 글자가 적힌 주판, 그 동안 판매한 책 관리표와 색 바랜 오래된 필통, 높은 곳의 책을 꺼낼 때 사용하는 작은 사다리가 수십 년 세월의 흐름을 단번에 거꾸로 되돌린다. 책방 양 벽면과 중앙에 놓인 책꽂이는 할머니의 부친이 손수 제작한 것이라는데, 앞으로도 몇 십 년은 충분히 견딜 만큼 튼튼해 보였다. 잡다한 물건이 쌓인 가운데 도대체 언제적 물건인지 내 시선을 붙잡는 게 있었다. 소니(SONY)사에서도 탐을 내 ‘팔라’고 여러 번 찾아왔었다는 이 물건은, 꼭 옛날 타자기처럼 생겼는데 ‘계산기 겸 소형금고’라고 한다. 서울 인사동에 들고 가면 아마도 꽤 높은 가격에도 사려는 사람이 줄 서지 않을까,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이것 역시 몇 년 된 것인지 모른다고 한다.
할머니와 얘기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저게 뭘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되는 누런 봉투가 여럿 눈에 띄었다. “저게 뭔가요?” “한 7, 8년쯤 전에 단골 손님이 계산을 하고도 찾아가지 않은 책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손님이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는데, 혹시라도 가족들이 찾으러 올지 몰라 쌓아둔 겁니다.” 양해를 얻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봉투 안에는 종류가 다른 몇 가지 책과 주간문춘(週刊文春)이 대부분이었다. 십여 년이 지나도록 버리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 왠지 내 가슴에도 뭉클함과 함께 따뜻함이 전해져 왔다.
자매할머니 책방을 취재하면서, 모든 게 디지털화 되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요즘,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 세기쯤 전 세상에 가 있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이 쓰시던 옛 물건들을 아직도 소중히 사용하고 있고, 주판으로 계산을 하며 에어컨도 없이 부채로 더위를 견디는 자매할머니. 주변의 높은 건물 사이에 끼어 있어 마치 어른 사이에 있는 꼬마처럼 보이는 2층 건물은, 두 분 할머니의 욕심 없는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두 분 할머니, 부디 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다카다노바바역(高田馬場驛)으로 가기 위해 와세다 거리를 걷다 보니 현대화된 빌딩 사이에 다 쓰러져가는(?), 그러나 매우 고풍스러운2층집이 있는 게 보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주 작은 집으로, 지금은 폐가(廢家)인 듯 한데 자세히 보니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었던 모양이다. 전통이 살아 있는 이 거리에도 디지털 시대와 함께 서서히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디지털 음악이 레코드로 듣던 음악감상실을 밀어낸 것이리라. 또한 와세다 거리는 근대와 현대 그리고 세계가 함께 숨쉬는 거리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인도, 네팔 등 아시아 국가의 전통이 느껴지는 이색적인 가게가 눈을 끈다. 색다른 모자 하나 사볼까 하고 기웃거려보지만, “빨리 가자!”며 보채는 일행의 눈총에 발길을 돌린다.
와세다 거리를 지나 다카다노바바 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들어섰는데, 어? 한글 안내판이~! 아하~ 이곳은 한국인의 왕래가 많은 곳이구나~! 그리고 저 아저씨는 주변을 잘 살피기 위해 나무 받침대 위에 올라선 걸까? 아니면 키가 작아서? 이왕이면 좀 더 높은 걸 이용하시지~^^* 한 고교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세련된 포스터가 또 셔터를 누르게 한다. 연예인을 모델로 한 포스터 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가고 싶은 대학과 자신의 소망을 새긴 자갈에서 청소년들의 고민과 꿈을 읽는다.
다음은, 그 동안 내 글에 몇 번 소개했던 일본 친구 유미코 집에 초대받은 얘기다. 몇 년 만에 도쿄를 찾은 한국친구를 위해 요코하마에서 일부러 온 친구를 비롯해 여러 친구들이 나를 보러 온다고 한다. 자, 저와 같이 만나러 가실까요? P.S
와세다 거리 주변을 자세하게 그려놓은 지도(왼쪽)와, 와세다대학 출신 인물들이 일본 전역에 걸쳐 영향을 끼친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놓은 ‘인물지도’를 보면 감탄이 절로 쏟아진다. 또 여기에는 와세다대학을 방문한 세계적 인물들을 표기해 놓아 명문대임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대통령과 아인슈타인, 극작가 버나드 쇼, 토인비, 타고르 등이 다녀갔다는데, 이 지도 하나만 있어도 수많은 얘깃거리가 나올 법하다. 자매할머니 책방 <다이칸도(大觀堂)>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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