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본

3)도쿄의 오래된 친구 만나러 가는 길

릴리c 2009. 12. 14. 19:29

도쿄의 오래된 친구 만나러 가는 길
<도쿄거리 걷기>③ 상가홍보 밴드, 음식을 가져온 사람들, 추억
 
최경순 (일본 전문 번역가)

나레이터 모델, 품바 보다 아마밴드공연 ‘상가홍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날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친구, 참 좋은 단어이다.

나는 지금 친구를 만나러 간다. 외국인 친구~ 여고시절 외국인과 펜팔 하는 같은 반 아이가 너무나 부러워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지금 나의 외국인 친구는 일본인이다.

그 친구가 사는 동네의 전철역(上井草-가미이구사역)에서 내렸다. 늘 조용한 동네였는데 역사 밖으로 나오니 길거리에서 귀에 익은 팝송이 들린다. 그것도 라이브로.

♬...When I was a little bitty baby / My mama would rock me in the cradle

In them old cotton fields back home...♬

♬...내가 갓난 아이였을 때 엄마는 요람에서 날 흔들어 달래주셨죠

그건 고향의 목화밭에서였어요...♬

 
▲ 역 앞에서 노래부르는 밴드     ©최경순
▲  무명 음악인 관람객 - 가미이구사 역 근처   ©최경순

오빠가 기타 치며 부르던 Cotton Field를 도쿄에서 들으니 어릴 적 동네를 찾은 기분이다.
역 앞, 상점이 죽 늘어서 있는 길가의 작은 공터에 제법 멤버를 갖춘 밴드가 연주 하는 게 아닌가?
관객은 별로 없으나 연주는 매우 진지하다.

도쿄 거리를 걷다 보면 낮이나 밤이나 길에서 연주하는 무명음악인을 보게 된다.
대개 솔로 아니면 2인조가 보통인데 이들은 빅밴드이다. 6인조 밴드가 열심히 연주하는 이유가 무얼까? 

“우리 동네의 정기 이벤트인데 상가 선전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전문 밴드는 아니고, 각자 직장에 다니면서 연주가 있으면 참여합니다.”
“멤버 중 일부는 학부형 모임에서 안 사람이에요.”

팝송을 멋지게 불러주던 멤버의 리더라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
서울에서는 상점 개업이나 동네축제에 전문이벤트 회사를 통한 나레이터 모델들이 동원된다고 하니까
“아! 그렇습니까? 여기서는 출연료를 줄 수 없어서 동네주민이 직접 나와서 합니다.”
연주가 프로 같다고 하니까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10년 넘는 연주 경력을 지닌 프로급 실력의 아마밴드라고, 동행한 음악전문가가 평가해준다.
 
오야지밴드 <SIPPS>의 오무타 씨.    ©최경순

자신들을 ‘오야지(아버지) 밴드 <SIPPS>’(Sanya Igusa Parents Player의 약자) 라고 소개하는
오무타 씨(보컬 담당)에 의하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초등학교 50주년 행사(2006년 11월)에서
아이들에게 뭔가 색다른 걸 보여주기 위해 학부형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고 한다.
 
지금은 행사가 있을 때 긴급시에 달려 나와 도와주는 멤버들이 여럿 더 있다고 하는데,
특별히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한다며 활짝 웃었다.

늘씬한 나레이터 모델이나 익살스러운 품바의 북소리도 아닌 순수 아마추어 밴드가,
상가번영 홍보를 위해 정식 공연처럼 연주하는 게 보기 좋다고 동행한 음악전문가가 칭찬한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내 귓가에는 cotton fields 멜로디가 반복해서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It was down in Louisiana Just about a mile from...
루이지애나 아래 꼭 1마일 정도 떨어진 고향의 목화밭...♬
 
▲  역 앞의 한적한 거리  ©최경순

2001년, 짧은 일본유학 기간 동안 나를 위해 정말 눈물겹도록 배려해주고 신경 써준 일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았던
이번 도쿄여행. 드디어 유미코 씨를 만났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그녀도 나도 변한 모습을 감출 순 없었다.^^

유학시절 유미코 씨와. 그녀의 동네에서 벌어진 마쓰리를 구경하다 한 컷.     ©최경순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큐슈나 오사카, 홋카이도 등 여러 차례 일본을 다녀왔지만 도쿄는 오랜만이다.

도쿄로 출발하기 전날, 유미코 씨로부터
“내가 보낸 책 중간쯤에 악보가 하나 그려져 있는데, 그 가사 중 1절을 한국어로 번역해 올 수 있느냐?
최상을 만나기 위해 친구들이 올 예정인데 그 때 함께 부르려고 한다.”는 전화가 왔다. 

우리는 만나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번에 우리가 부를 노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2년 전, 유미코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딸(유미코)은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의식은 있으나 말을 못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아부지, 이 멜로디가 마음에 드시면 내 손을 꼭 잡으세요.” 하며 불렀는데 마음에 드는 부분에서
유미코 씨의 손을 아주 힘있게 잡아주셨고, 그 때마다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채보하게 했다고 한다.
 아버지 손을 잡고 노래 부르고 전화 걸고. 그러기를 수십 차례… 그렇게 해서 탄생된 노래 <에칸페르데의 사과나무>.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눈시울을 붉혔고, 유미코 씨도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한국친구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한국어 가사로 바꾼 그 노래를 불러주겠다니, 친구를 배려하려는 언니 같은 그 마음씀씀이에
난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미코 씨 아버지. 유미코 씨의 친정이 있는 후쿠이현(福井縣)에 갔을 때, 기분 좋다며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경순

문득 시 하나가 떠오른다.

…잔 별 서넛 데리고 / 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처마 끝마다 매달린 / 천근의 어둠을 보라
어둠이 길을 무너뜨린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 일년의 그림자도 지워버리고
그림자 슬피 우는 마을마저 덮어 버린다

(시인 강은교의 ‘12월의 시’ 중에서)

지금 이 글을 정리하는 12월의 밤!
잔 별 서넛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의 귀갓길이 아니라,
나는 지금 친구의 도타운 정을 보관한 보석함을 들고 친구에게 가고 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친구들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을 먹으며 도쿄의 밤을 보냈다.

유미코 씨의 남편이 특별 제조한 맥주와 라벨이 인상적이다. 라벨은 물론 유미코 씨가 그린 것인데,
인터넷에서 ‘맥주’라는 한글을 찾는다는 것이 그만 ‘액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친구를 위한 정성에 감탄사가 절로~!! 맥주는 검은색이었는데 맛도 괜찮았다.
 
重麦酒라는 라벨이 재밌다. 시게오(重)라고 발음하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 애칭으로 시게(重 shige)라 표기했다.    ©최경순
▲  참석한 사람들 중 몇 사람이 음식을 한가지씩 준비해 왔다.    ©최경순
일본은 이런 모임이 일상화 되어 있어 초대한 사람의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최경순
다시마간이 밴 생선회와 비빔국수…아오모리 현에서 몇 시간 전에 도착한 싱싱한 생선으로 포를 떠 다시마를 켜켜이 넣어 재운 것으로 쫀득거리면서 달달한 맛이 매우 좋았다(사진 왼쪽). 오른쪽은 한국의 맛이라며 레이코 씨가 준비해온 비빔국수.     ©최경순
 
▲  유미코 씨의 작은딸 치히로가 직접 만든 롤케익. 의자에 올라서서 레시피를 설명하고 있다. 단팥이 가득 들어 있는 정말 맛있는 케익이었다.   ©최경순

▲  자기소개… 전에 소개했던 <이케바나와 다도의 추억> 글에서 언급했던 료코 씨(작고)의 남편(사진 하단 중앙)을 비롯해, 한국인 3세 음악가 김신 씨(사진 하단 왼쪽, 신디사이저 음악가)도 자리를 같이 했다.    ©최경순

이날 참석한 친구 중에는, 나의 유학시절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료코 씨(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야마나카 씨도 일부러 와주었고,
료코의 친구인 오다 미치코 씨가 요코하마에서 일부러 와 주었다. 친구는 가고 없지만,
추억을 함께 나눈 사람들과 살아가는 얘기로 도쿄의 밤이 깊어갔다.

유미코 씨가 특별히 초대한 사람 중에는 재일 한국인 음악가(작곡가, 신디사이저 연주가) 김신 씨가 있는데,
그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매우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특히 그의 세 번 째 앨범인 <영원한 우주>는, 2000년에 일본인 우주비행사가 14일 동안 우주여행을 떠날 때
갖고 스페이셔틀 디스커버리호에 탑승, NASA에서 발행한 <우주비행 증명서>를 첨부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대륙을 아버지로, 섬의 바람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자칭 <재일지구인>(大陸を父に、島を母に持つ、
自称 <在日地球人>)이라고 말한다. 한국에는 2005년에 내한해 첫 공연을 가진 적이 있고,
전세계로 연주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국공연이 이뤄져 그의 연주를 다시 보고 싶다.
 
김신(앨범사진)    ©최경순
▲  도시락 싸다   ©최경순

늦은 시간까지 얘기를 나누고 합창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서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상 위에는 아직도 많은 음식이 남아 있는데 유미코 씨가 일회용 도시락을 들고 나온다.
각자 알아서 담아가라는 것이다. 남은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나 체면 같은 건 아예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채운다. 이것 또한 일상적인 생활습관인 듯 보인다.

늦은 밤, 역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길을 작은딸 치히로가 엄마와 함께 바래다주겠다며 나선다.

치히로는 8년 전, 내가 잘 먹지 못했던 돼지고기(스테이크였는데 속이 익지 않은 것 같아 조금밖에 먹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음식을 기억하는 자상한 아가씨다.
 
▲  파티   ©최경순
▲ 파티    ©최경순

유미코 씨 부부와 우리는 다음 날, 도쿄 도청전망대에 올라 시내를 구경했다.
그리고 내게 아주 특별한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미인이고 의사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여성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삶 속에서 매우 행복한 순간을 제공한다. 그 만남이 때로는 내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번 만남은 내 운명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까. 언제 기회가 되면 그 만남을 소개하겠다.

 
 



***다음은, 도쿄 시내에서 발견한 한 벌 8천 만원이 넘는 양복점 얘기를 하겠다.

뭐 특별한 가게도 아닌 ‘보통 양복점’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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