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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있는 마당 넓은 밀양 표충사

릴리c 2011. 9. 8. 08:30

다시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있는 경남 밀양 표충사(表忠寺)

 

==사찰 마당이 이렇게 넓다니, 그것도 4단~ 거긴 밀양 표충사라오!!

찰 하면 등산하듯 오른 산 중에 있어서 경내 마당이라야 그저 절 건물의 몇 배 정도에

이르는, 아담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이곳은...

국내에서 내가 본 사찰의 마당 중 가장 넓은 곳이었다. 바로 경남 밀양의 표충사.

다른 사찰에 비해 부속건물도 많았고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게 지어져 있는 매우 넓은

천 년 고찰이었다.

처서가 코 앞인데도 여름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날, 경내 곳곳의 붉은 백일홍이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던 표충사의 풍경은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게

되었다.

표충사의 창건기록을 보니

이 法燈[법등]이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載藥山) 표충사에 인연하니 
때가 654년 신라 진덕여왕 팔년(태종무열왕원년)에 원효대사께서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 이곳 재악산정에 오르니 남쪽 계곡 竹田樹林[죽전수림]에 五色祥雲[오색상운]을 보고 
이 곳에 山門開所[산문개소]하니  
“竹園精舍[죽원정사]”
라 하였다.
고 되어 있으니 참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표충사의 특이한 점 하나는,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충사의 중심인 대광전이 있는 앞마당.

이 사찰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는데, 서 있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니다. 사찰 경내에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마침 비가 내려서인지 가라앉은 분위기가 천년 고찰의 향기를 더욱 짙게 내뿜고 있어 굳이

누군가에게 기원하지 않아도 부처님의 자비가 중생의 온갖 시련을 어루만져 줄 것만 같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표충사의 입구 정문인 수충루의 모습이다.

일주문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수충루 앞의 주차장에서부터 들어갔기 때문.

2층 누각의 수충루와 주변의 우거진 숲이 첫인상부터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밀양시 교통에 있는 '밀양 향교의 정문 풍화루'와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있는 '예림서원의

독서루'와 더불어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이다.

누각 아래를 통해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운무에 휘감긴 산과 전각들이 눈에 들어오고 넓은 마당이

시원하게 방문객을 맞아준다.

 

수충루를 지나 처음 만나는 1단 '첫째 마당'.

내 나름대로 표충사의 경내 마당에 이름을 붙여 적어보려고 한다. 1단(첫 마당), 2단(둘째마당)

3단(셋째 마당)...이런 식으로. 

측면으로 그린다면 계단식이 되는 셈이다.

 

 

경내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첫 마당'의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表忠祠). 사찰에 왠 사당?

이곳이 바로 경내에 있는 표충서원과 함께 표충사(寺)를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곳임을 확인케

해주는 장소다.  이 사찰의 이름이 처음부터 표충사였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신라시대 창건 때에는 <죽림사>였다가 후에 <영정사>로 바뀌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헌종 때

그 당시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

로 개칭하였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의 영정을 옮기면서, 이와 함께 <표충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표충사>로 불렸다는 것.

그러나 실제로 '표충서원'은 앞에 따로 있었다.

아래 영정 중 가운데 수염난 인물이 사명대사이고 왼쪽이 서산, 오른쪽이 기허대사이다.

 

 

표충사(表忠祠)에서 내려다본 첫째 마당의 일부.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표충서원'이고 왼쪽이 유물관, 멀리 정면에 보이는 것이 설법전이다.

 

표충사당을 나와 '둘째 마당'으로 가기 위해 이 계단을 올라야 한다.

예쁜 돌계단과 양 옆의 백일홍이 사천왕문을 우아하게 장식하고 있어 표충사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해준다. 젖은 돌계단에 떨어진 백일홍 붉은 꽃마저 사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듯 하다

 

 

 

사천왕문 주변의 아름다운 잔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둘째 마당'의 멋진 풍경이 바톤을 이어 받는다.

아래 보이는 삼층 석탑석등 역시 사찰의 창건시기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석탑은 높이 7.7미터에 이른다.

 

 

 

 

삼층 석탑이 있는 둘째 마당에서 다시 계단 몇 개를 오르니 표충사의 중심부인 대광전↑, 이곳이

'셋째 마당'인 셈이다. 사찰의 중심답게 가장 넓고 시야가 탁 트여 있어 규모를 짐작케 하기도.

삼존불이 안치된 대광전 맞은 편에는 사방이 개방된 근사한 우화루(雨花樓)↓가 앉아 있다.

대광전을 마주하여 자리 잡은 우화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원래는 이 우화루를 통해야 중심법당인 대광전으로 들어서는 중문이었고, 최근까지 우화루

앞으로 진입로가 있었으나 가람을 정비하면서 진입로가 바뀐 것이라고 한다.

현재 우화루는 야외참선 장소로 쓰이는데, 여기 마루에 올라서 내려다 보면 아래로 남계천

맑은 물이 발아래로 흐른다.

 

내가 표충사엘 다시 가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화루(雨花樓) 라는 이름대로 꽃비가 날리는 모습을 여기 우화루에 앉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번 갔을 땐 답사 수준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그런 호사를 누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비가 내리던 그날처럼, 아니면 낙엽 떨어지는 어느 날이라도 좋다.

다시 그곳을 찾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건 낙엽이건 바라보며 발 아래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닦고 눈을 닦고 세상 근심을 닦는다면, 마음은 저절로 닦이지 않을까......

 

 

흔히 사찰에서 '대웅전'으로 불리는 곳을 표충사에선 '대광전'으로 부른다.

가운데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관음전과 명부전이 있는, 표충사의 맨 윗마당인 4단 '넷째 마당'이다.

이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명경지수()의 바다에 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이 또한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기에 나는 지금도 표충사를 그리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광전 옆에 나란히 자리한 팔상전.

1854년(철종 5년)에 당시 주지였던 환월선사가 창건하였으며, 192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3년 후 중창한 것이라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상만 봉안되어 있다.

 

 

 

 

(위 사진은 '표충사' 홈피에서 가져온 것임)

짧은 시간 동안 경내를 둘러보고 돌아서려니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내려가는 길에 영정약수(靈井藥數) 한 모금 받아 마신다.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는 데서 영정약수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한 때 이 사찰을 <영정사>

라 불렀던 것도 바로 이 약수 이름에서 유래했던 것.

 

 

 

돌아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삼층석탑도 다시 보고, 사천왕문에서 내려다보는 수충루의 모습도

두 눈에, 마음속에 다시 새긴다.

 

 

 

 

 

표충사의 정문 '수충루'를 뒤로 하니 온통 푸른 숲이다.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을 숲길...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으면 일주문까지 걸어서 가봐야겠다.

산새 소리, 개울물 소리를 벗삼으며......

 

 

표충사

위치 :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23

전화 : 055-352-1150, 359-5637(밀양시 문화관광과)

주변 관광지 : 얼음골, 사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