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
1991년 유고 내전 당시 폭격으로 자칫 폐허가 될 위기에 처했던 두브로브니크.
국제사회와 유럽 지성인들의 호소로 포화 속에서도 겨우 살아남게 됐고 그 덕분에 지금은
전세계의 여행객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최고의 여행지가 된 곳.
에메랄드빛 아드리아 해를 낀 두브로브니크는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의 슬픈 역사 때문에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성벽을 걸으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던 곳.
"지상의 낙원이 궁금하면 두브로브니크를 보라."
"지중해의 보석"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두브로브니크 고성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당신은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지닌 예술작품"이라고 극찬했던 드가의 말대로, 이곳 어디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 같은 사진에 마음을 홀랑 빼앗기게 될 것이다.
성벽에서 내려다본 오노프리오 샘(분수)과 플라차 거리.
오노프리오 샘 주변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필레 게이트를 통해 고성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지금도 콸콸 쏟아지는 샘과 만나게 되고
눈부신 플라차 대로의 대리석 바닥에 서는 순간
심하게 고동치는 심작박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이미 두브로브니크와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황홀한 기분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이 도시의 마력에 이끌려 몸과 마음은 무장해제 될 터.
그리고 다시...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성벽으로 올라간다, 성벽 걷기.
13~15세기에 축조된 성벽은 약 2km에 이른다.
높이 25m 두께 2~6m나 되고 네 개의 성채가 성벽 곳곳에 자리한다.
성 안에는 현재 1,2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성벽 가장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
저 앞에 보이는 섬이 바로 누드 해변이 있는 로크롬 섬(Lokrun Island)이다.
장 도르메송 프랑스 학술원장 등 유럽의 지성인들은
"유럽의 문명과 예술의 상징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구경만 할 것인가?"라며 분개했다.
이들은 전쟁 중 두브로브니크 앞바다에 배를 띄워
"이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리려면 먼저 우리를 쏴라!"며 저항했고,
성벽을 따라 인간띠를 만들어 시위하기도 했다.
올드타운 곳곳에 남은 총탄 자국은 당시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그래도 이 만큼 보존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도시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쏟은 숭고한 노력 때문이었다.
올드 타운 동쪽 끝의 골목을 조금만 걸어가면
성벽에 오를 수 있는 입구가 나온다.
25m에 이르는 높은 성벽이
철옹성 요새였던 과거 시대를 묵묵히 보여준다.
지금도 이 건물들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불과 20여 년 전의 유고 내전 때 겪은
전쟁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라고 한다.
골목을 지나다 만난 성벽의 열쇠모양 구멍.
이것이 무엇을 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두브로브니크는
이 땅을 탐내는 외세를 막아내기 위해 이 성을 축조했을 것이고,
호시탐탐 침입을 노리는 적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을 테니 성벽 곳곳의 이런 구멍을 통해
적의 동태를 살피지 않았을까?
(아시는 분 갈쳐주세여~^^)
본격적인 성벽투어가 시작된다.
조금 높은 곳에 오르니 서쪽으로 마악 넘어가는 태양에
흰구름 하늘이 더욱 눈부시다.
조금 오르다 뒤돌아보니
아드리아 해의 맑고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두브로브니크가
그림처럼 조망된다.
수많은 관광객을 쏟아놓는 대형 크루즈선은
두브로브니크 해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언젠간...
언젠간 나도 저런 크루즈를 타고 여행을 떠나얄 텐데...
오늘도 꿈꾼다.
올드 타운의 모습은 서서히 내 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고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붉은 지붕들이 정겹고 따스하게 손짓한다.
어쩌면 저들은 20여 년 전의 아픈 상처를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웃음소리에 묻으려고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아이들이 조잘대듯
저 붉은 지붕들 역시 애써 즐겁게 수다를 떠는 건 아닐까.
지붕의 색이 다른 것은
오래 된 것일수록 퇴색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 사진 속 초록 네모 안의 작은 종을 보시라.
성 안 건물의 절반이 교회라고 할 만큼 교회가 많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작은 교회 건물이 바로 색바랜 이 건물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일지도 모르겠다.
안에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규모로 보아 서너 명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교회당이다.
직접 들어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골목길도
성벽 위를 걸으니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며 성벽을 걷는 일이
플라차 거리를 걷는 것 만큼이나 즐겁고 행복하다.
건너편 마주보이는 성채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이 종종 열리기도 한다고.
아드리아 해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과 석양을 온몸으로 맞으며
'햄릿' 공연을 본다...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바다에 떠 있는 로크룸 섬 주변의 보트여행 포스팅은
잠시 후에~~~^^*
여기서도 인증샷~!
성벽을 걷는 동안 줄곧 내 시야에 아름답게 어른거렸던
크로아티아 젊은 커플.
아름다운 외모도 그렇거니와 둘이 어찌나 다정하던지
영락없는 '연인'으로 생각했는데...
급기야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너희들 참 예쁘다~!"
외모보다 더 매혹적인 미소로 답례한다.
그런데...
자신들을 '사촌'이라고 소개한다.
하기야
일본에서는 사촌끼리도 결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내가 만난 이들 역시 '연인' 되지 말란 법은 없으렷다.
성벽의 가장 높은 망루에서 찍은 모습.
멀리 지나는 배 한 척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적들의 동태를 살피던 그 옛날의 병사가 되어 볼까?ㅎㅎ
머리를 맞댄 붉은 기와지붕은
유럽의 어떤 곳에서 본 기와지붕보다 내 가슴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혹독한 내전을 겪으며 상처받은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때문일까...
지금도 난 눈부시게 빛나던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짧았던 일정에 아쉬워하고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곳을 그리워할 것이다.
절반의 '성벽 걷기'는 이곳에서 마무리하게 된다.
사실 해안가 쪽으로 걸었어도 좋았을 테지만
주어진 짧은 시간 때문에 난 산 쪽으로 난 성벽을 택했다.
여기서 내려가면 난 저 아래 오노프리오 샘물을 마시는 것으로
두브로브니크의 낮 투어를 마무리할 것이다.
아쉬움에 애꿎은 셔터만 계속 눌러댔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두브로브니크,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를...
성벽을 내려오니 작은 간판이 보인다.
외국 여행객을 위한 오디오 가이드인 모양인데,
왜 한국어 설명은 없는 거냐규~~!!
아래 그림의 초록 선은 우리 일행이 걸은 성벽 표시입니다.
오를란도 기둥 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
오노프리오 샘으로 내려옵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유고 연방 시절 가장 주축을 이뤘던 나라)간에는,
서로 인종학살을 자행했다며 상대방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상태다.
(크로아티아가 1999년에 세르비아는 2010년에 각각 ICJ에 제소)
최근 다시 관계가 악화되었으니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전쟁의 상처'가
다시 도지는 것은 아닐까 괜한 염려가 되기도 한다.
과거가 되풀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두 나라 모두 아직 EU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
크로아티아의 또 다른 곳 보기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천년고도 자그레브 http://blog.daum.net/lilyfield/7837396
에메랄드빛 호수 플리트 비체 http://blog.daum.net/lilyfield/783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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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누드해변 http://blog.daum.net/lilyfield/7837505
다음 여정은요~
누드해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궁금하시죠? 5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