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가 보이는 바닷가 고성(古城) 마을, 튀니지 함마멧과 채색 도자기의 고장 나불
이제 서서히 튀니지를 떠날 시각이 다가온다.
언제나 그렇듯, 떠나야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튀니지에서의 마지막은 어느 곳보다도 여유로운 일정으로 지중해를 바라보며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마무리했다. 다음에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 5일장이 열리는 Nabeul 나불
수도 튀니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나불이라는 도시가 있다.
우리나라 도자기 하면 이천을 떠올리듯이 튀니지의 도자기 생산지는 나불이다. 도자기를 굽는 공장도 이 지역에만
2천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로마시대에 네아폴리스(Neapolis)라고 불렸던 ‘나불’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이탈리아
나폴리의 어원이 되었다. 나불에서는 3월에 오렌지축제, 와인축제가 열린다.
매주 금요일 오전엔 우리나라 5일장처럼 장이 열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금요시장에서 도자기, 향료, 과일, 자스민 꽃, 수제품 카펫, 가죽제품, 자수 등을 흥정하여 살 수 있다.
그들이 부르는 값의 30%, 잘하면 10%에도 살 수 있다. 일명 낙타 시장이라도 부르는데, 지금은 낙타매매는 볼 수 없다고.
운이 좋으면 튀니지 전통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고 말탄 기수가 벌이는 곡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엔 이 장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이곳이 나불임을 금방 알 수 있는 대형 상징물이 나타났다.
▲▼ 우리가 방문한 나불의 도자기 전시장.
입구 가득 쌓여 있는 공예품들이 나를 유혹했지만, 무게와 파손될 것을 생각하니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심사숙고한 끝에 접시 외에 등(燈) 하나를 샀는데 집에 와보니 초를 걸치는 아랫부분은 결국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 아랫쪽 초를 꽂는 부분은 산산조각나고 윗부분만 남은 등(燈).
동전보다 조금 큰 낙타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왼쪽). 덤으로 한 개 얻어온 것.
▼나불을 상징하는 파란색 문양 접시.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어서 똑같은 문양이 하나도 없다. 큰맘 먹고 각기 모양이 다른 접시 세 개를 사왔는데
합해서 100불 주었다. 시장에서 샀더라면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었을 지도... 이걸 보면서 두고두고 나불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흙과 물이 달라서인지 우리 도자기에 비해 강도가 무척 약하다.
그들이 도자기채색에 주로 사용하는 파랑색은 하늘, 황색은 태양, 흰색은 자스민 향기를 뜻하며(참고로 튀니지의 국화는
아카시아) 초록은 천국을 의미한다고 한다.
▲도자기를 빚는 청년.
한국에서 온 40여 명의 대규모 단체손님들 때문에 놀랐는지 아님 신기했는지, 연신 곁눈질 하다가 빚고 있던 ‘작품’이
찌그러지는 ‘실수’를 범했다. 계산대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온 적은 처음이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쇼핑 어지간히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인기짱인 관광객이 될 것임에 틀림없으렷다~!
▲너무 원색이라 촌스러울 것 같았지만 막상 돌아와서 ‘하나쯤 사올걸’ 하고 후회했던 도자기.
▲각종 향신료와 양념류.
나불의 시장에선 도자기와 가죽제품(카멜가죽-부드럽기가 양가죽과 소가죽의 중간정도) 외에도 다양한 향신료가
판매되고 있다. 바질, 로즈메리, 페퍼민트, 라벤다, 레몬그래스 등등. 목욕이나 초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향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음식에 다양한 맛을 내는 것이다. 어느 곳엘 가든지 향신료 파는 곳이 많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여행 중에 이런 모습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관광용 마차의 바퀴 구르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거리를 한결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곳,
튀니지의 나불은 아직 무공해 지역인 것 같다.
♠ Hammamet 함마멧
‘목욕탕이 많다’는 뜻의 함마멧은 수도 튀니스에서 약 65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에 있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바다,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 알리바바를 떠올리게 하는 아랍풍 호텔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호텔들이 140여 개나 있으니 명실상부한 튀니지 최고의 휴양지다. 쾌청한 날씨와
싼 물가 때문에 유럽인들이 주말여행지로 쉽게 찾는 곳. 시내의 레스토랑, 기념품가게, 바, 카페에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며, 해안가 역시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맛보는 지중해 음식, 특히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로 만든 환상적인 씨푸드는 여행자를 행복하게 만든다.
10월이면 튀니지를 상징하는 꽃 자스민축제가 열린다니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아랍 풍이 넘치는 시내를 느긋하게
구경할 수 없는 게 무엇보다도 아쉬웠다. 함마멧 분위기를 살짝 맛보는 것으로 튀니지와 작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시간 뒤엔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니, 역시 여행은 아쉬움 속에 돌아가는 건가 보다...
▲▼오래된 성(城)과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2층에서.
▲레스토랑의 2층 내려가는 곳에서...
별다른 장식도 아닌데 분위기가 좋아 한 컷.
▼아치 하나 때문에 뒷골목마저도 운치 있어 보인다.
▲▼고성(古城)이 있고 바로 앞에 지중해가 펼쳐져 있어 더욱 아름다운 함마멧.
▲▼성벽 주변의 노점.
▼내일이면 튀니지를 떠난다는 아쉬움과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며,
7박 8일을 동고동락했던 일행과 와인으로 건배~! (튀니지는 ‘마공Magon 와인'이 유명하다. 매일저녁 마공을 마셨기에
이날은 다른 걸로 주문했다.) 강렬한 태양이 빚은 튀니지의 포도주...맛이 너무 좋아 한 병 사들고 왔다.
▲▼호텔 내 한 바에서. 물담배를 피우는 유럽 여행객들.
자욱한 담배연기와 재즈음악이 왠지 잘 어울리는 Bar였다.
(아래) 호텔 로비의 대형 모자이크 앞에서.
▲8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본 튀니지의 마지막
하늘빛은 이랬다.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으로, 나의 집으로 향한다.
튀니지여, 안녕~!
*************
아프리카 북쪽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 튀니지는 전체적으로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거리의 카페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술을 마시며 북적이고, 남녀가 어울려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염되지 않은 ‘튀니지안 블루’를 닮아서일까, 그곳에서 만난 튀니지인들은 한결같이
선한 눈빛과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니발 장군이 로마의 스키피오에게 패한 BC 146년 제2차 포에니전쟁 전까지 수백 년간 지중해를 지배해온
북아프리카의 대제국이었던 튀니지는, 3천년의 오랜 역사 가운데 로마-이슬람 왕조-오스만- 프랑스 등의
지배를 받으며 역사의 대부분을 침략의 역사로 살았다.
그로 인한 ‘다양한 문화 공존’의 매력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아이러니를 지닌 나라. 독립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인 1956년. 백 년 가까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터라 지금도 아랍어와 함께 불어가 통용되는 나라.
독립 후 50년 동안 집권한 대통령은 두 명에 불과하지만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다른 아랍국가에 비해 여성의
법적권리와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이는 초대 대통령인 하비브 부르기바에 의한 개방정책의 결과.
불과 3~40년 전까지만 해도 튀니지 여성 역시 아랍사회를 특징짓는 여성의 불리한 입장을 감내하고 살아왔다.
결혼도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해야 했고 이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독립 후 최초로 실시한 정책의 하나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대우의 향상을 위한 <개인의 지위규약>을 도입했다.
그 규약은 다음과 같다.
일부다처제의 폐지.
혼인은 당사자가 동의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자의 혼인은 부친 뿐 아니라 모친의 허락을 요한다.
이혼의 우선권은 아내와 남편이 동등하게 갖는다.
여성은 가족계획에 참여하고 병원에서의 중절에 관한 권리를 갖는다.
우리의 상식으로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여성을 히잡 속에 가두어놓고 복종과 엄격한 통제를 요구해온 아랍사회의
여성지위를 생각하면, ‘개혁’으로 여기는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자유분방한 튀니지를 방문한
<한국 최초의 단체관광객>이 되었다.
앞으로는 한국인에게 “자파니?” “차이니?”하는 물음 대신 “코리안?”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기를 기대한다.
우리 일행이 그들에게 ‘매너 좋고 교양 있는 한국인’으로 남았기를 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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