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나이를 먹는다는 것

릴리c 2008. 1. 9. 15:20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느 날인가, 좋아하던 푸른색이 갑자기 낯설어진 적이 있다.

즐겨 입던 푸른색 자켓이 왠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얼굴빛마저 칙칙해 보이더니 붉은기가 도는 밝은 색으로 바꿔 입자 훨씬 나아 보인다. 아, 그 ‘칙칙함’은 바로 ‘나이’였던 것이다. 흰머리가 눈에 띠었을 때, 돋보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의 충격과 같은 무게로, 푸른색에 대한 ‘거부감’은 나를 상실감에 빠뜨렸다.


  어렸을 때, 할머니들은 왜 붉은색을 유난히 좋아하시는지 참 이상했다. 어느덧 인생의 중년에 서있는 나 역시도 이젠 붉은색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어두운 색보다는 밝은 색이, 찬색보다는 따뜻한 색이 마음을 끈다.


  어르신들이 붉은색을 좋아하는 이유를 내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된 요즘, 애써 ‘나이’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관심사를 이런저런 것으로 돌려보지만, 그게 바로 나이 먹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차라리 이를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바꾸고 나니 이젠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나이 들음의 미학’이라도 찾아볼까, 하는 여유도...


  전에는 연예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성형수술이나 피부성형이 이젠 모든 여성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얼굴주름을 없애는 건 기본, 쌩얼미인 시대에 걸맞는 뽀샤시하고 잡티 없는 피부가 중년여성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며 몸매도 '부위별'로 손을 댄다. 자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기술도 업그레이드 되어, 과거엔 쌍꺼풀과 코높이는 정도에 대해서만 알았는데 지금은 도무지 이름만 들어선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용어가 수두룩하다. 보톡스도 구시대 용어가 된지 이미 오래다.


  남들처럼 신체에다 뭉텅이 돈 쏟아 부어 가꾸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심술에서가 아니라, 환갑나이에 주름하나 없는 얼굴을 상상이라도 할라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든다. 그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가. 표면의 주름보다 구김살 없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눈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보고 가슴으로 이해하는 나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젊음을 잃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체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던 어느 시인의 글처럼, 젊은이가 갖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줄 알게 되는 것이리라. 그래야 비로소 이해심도, 배려하는 마음도 진심에서 우러나오게 되는 거겠지.


그때 가서야 그윽한 중년의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게 아닐까.

중년이여, 아름답게 늙어가자!

 

 

(2007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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