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도

8. 카주라호 에로틱사원, 미성년자는 클릭하지 마셈^^*

릴리c 2011. 4. 28. 18:32

카주라호

2007년 3월 4일


카주라호 기념물군 에로틱 힌두교사원

Khajuraho Group of Monuments

세계문화유산, 인도 에로틱 예술의 정수 KHAJURAHO

인도 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카주라호는 동서에 걸쳐 천년가량 된 사원들이다.

이 사원들은 찬델라 왕조에 만들어졌다.

찬델라 왕조는 한때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였지만 500년을 이어가던 왕조의 역사가

인도 전역을 휩쓴 회교세력들에 의하여 결국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왕조는 950년부터 1050년에 이르기까지 85개의 사원을 조성하였으며 지금은

불과 22개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사원의 규모나 조각 자체로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뜨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미투나상들 때문에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다.

카주라호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서 많이 나는 카주르(대추야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카주라호의 사원군은 서쪽사원군, 동쪽사원군, 그리고

남쪽사원군으로 분류된다. 서부 사원군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카주라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미투나(남녀교합)상들이 바로 이곳에 밀집돼 있다.

서부 사원군 중 규모가 가장 큰 사원이며 외벽에 수많은 미투나상이 조각되어 있다.

1025~1050년 사이에 건축된 것으로 사원의 벽면엔 900개가 넘는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천 년 전에 만든 인체의 곡선이 매우 섬세하고 육감적인 이곳의 미투나상들은

예술적으로나 건축미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곳이다.

 


아침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사원.

 


찬델라 왕조는 마치 신화의 내용을 현실화시키려는 듯 열정을 쏟아 조각을 빚어냈다.

힌두교의 카마수트라 경전(기원전 6세기에 쓰여진 카마수트라-Kama Sutra,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애서[性愛書])을 바탕으로 84체위 중 83체위 형상의

미투나상을 만들었으며, 마지막 한 가지는 각자의 고유한 것으로 남겨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렇게 많은 미투나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밝힌 자료는 아직 없다고 한다.


 요가자세로도 표현키 어려운 고난이도의 자세...

서로의 몸을 감싸며 휘어지는 남녀, 'sweat mango'라고 표현하는 여자의 가슴,

남녀의 사랑행위를 보고 빙긋이 웃는 코끼리상등 그야말로 활기 넘치는 미투나상은

숨은그림찾기처럼 곳곳에 조각되어 있다.




쇼킹한 수간장면


그룹섹스를 조각한 모습도 보이고...


 

성행위에 대한 노골적인 모습 때문에 마하트마 간디가 이곳을 보고, 차라리

부셔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왜 신성해야 할 사원에 이토록 야한 조각상을 새겼을까? 

남성만 있는 사원학교의 브라만 청년들을 위해 조각상을 통해 카마수트라를

표현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심한 관음증 환자였던 비의 신 인드라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깨달음을 얻는 방법의 하나로 육체적 쾌락과

요가(영적훈련)는 똑같이 중요하다는 탄트라신앙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현대 인도인들은 '사랑이란,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혼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도인들의 75%는 중매결혼을 한다고 한다.  만나서 사랑이 싹트고

그래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별자리(궁합), 카스트, 경제적인 여건, 교육 정도를 더 중요시 하여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혼인을 이상적으로 여긴다고 하니, 어쩌면 천년전 찬드라왕조 시절의

유분방한 性에서 세월은 거꾸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락쉬미 사원-일명 코끼리 사원.

비쉬누 신을 모신 곳으로 서쪽 그룹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차선도 없는 '무늬만 고속도로'


에로틱한 조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카주라호까지는 불과 400Km에 불과한 거리지만,

찝차로 10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고속도로라고는 해도 우리의 시골길 같다.

자전거, 우마차는 기본이고 맨몸의 소가 어슬렁거리니 도대체 무늬만 고속도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앞자리에 앉은 나는,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아야하는 도로 상황으로

인해 출발한지 30분도 못되어 멀미를 시작했고, 그날 이후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3일간

물만 마셔도 토하는 고통을 당했다.

갑자기 개나 소가 길을 가로막는 건 보통이어서, 지그재그 운전으로 그들을 피해야 한다.

한번은 차 앞으로 냅다 달려드는 강아지를 피하려다가 사고가 날 뻔!! 하기도 했다.

도로 옆을 천천히 걷던 그 강아지는 마치 ‘자살’하려는 것처럼 차로 덤벼들었던 것.

 

Holi - Festival of Color(色의 축제)

인도전역에 <홀리축제>가 벌어졌던 3월 4일.

우리의 정월보름명절인 음력1월15일과 거의 때를 같이 한다.  

‘영혼의 고향’이라는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아침.

갠지스강의 일출을 끝으로 바라나시와 아쉬운 작별을 하기 위해 가트계단을

걸어올라오는데..............갑자기 얼굴과 머리 위로 뭔가가 뿌려졌다. 오, 마이 갓!!

그리곤 눈을 뜰 수가 없다. 온통 붉은 가루... 알고 보니 오늘이 ‘色의 축제’가 열리는

<홀리>란다.

 



 폭력적으로 보여 무서웠기 때문에 달리는 차 안이 아니면 감히 사진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로 위 두 장의 사진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사진임)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로 가는 동안 몇 개의 주(州) 경계선을 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통행세를 내야 한다. 그날이 마침 인도의 대축제인 <홀리 축제>날이었다.

동네 이르는 곳마다 아이고 어른이고 죄다 나와서 길을 막고 환호성과 비명을 질러댄다.

크고 반짝이는 두 눈만 빼곤 온몸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모습으로 물감을

뿌려대거나 우리가 탄 차를 탕탕 두드려대니, 그야말로 무슨 일 일어날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러나 물감을 뿌리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이고,

낯선 이방인에게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메시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라나시를 떠날 때 붉은 가루 세례를 받은 것도 그런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그날 아침, 붉은 가루 세례를 받아 붉게 물든 내 몰골을 본 Amit(인도인 가이드)은

“축복 받은 거에요!”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었다. 나~참!

 

가장 낮은 계급이 즐기던 <홀리>는, 지금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일시적이나마 연령, 종파, 지역, 계급, 성별, 학력 등을 초월하여

서로 색 가루(Gulal)를 발라주면서 묵은 악의나 반감, 차별감정을 잊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희망과 열정, 기쁨을 누리고 더불어 그해의 수확에 대한

기원을 담은 일종의 송구영신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 도를 넘어 젊은이들은 홀리 축제를 광적으로 즐긴다고 한다.


색깔의 축제라고 붙인 이유는 서로의 몸과 얼굴에 색깔을 칠해주면서 겨울의 악령과

잡귀를 없앤다고 하는데 더 많이, 다양한 색깔을 칠할수록 행운이 찾아온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당한(?) 홀리 세례 역시 그런 의미가 있었을텐데......

또 갠지스강가에서 사제로부터 축복기도(!?)까지 받았음에도,

나는 그날 이후 며칠을 두통과 그로 인한 구토에 시달려야 했다!! 쩝~!


자동차도 빵빵~ 오토릭샤도 사이클 릭샤도 빵빵~

뒤섞여 있는 온갖 소음 속에서 자신의 클랙슨 소리가 잘 들리게 하기 위해 참으로

다양했다. 듣다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동물 웃음소리도 섞여있다. 츠암~나!

이 나라에서 클랙슨은 위험상황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앞차에게 뒷차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형트럭 뒤에는 어김없이 "Horn Please!" 는 문구가 적혀 있으니 말이다.



카주라호로 가는 도로에 화장실이 없는 관계로......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자들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나무 아래로,

여자들은 높이 자란 풀밭을 찾아 나선다.^^*

이것 또한 타국에서의 '추억'이다ㅎㅎㅎ


 

***카주라호로 가는 길에서 본 것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죽은 소를 鳥葬하는 모습이었다. 나무로 지지대를 높이 세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놓아 죽은 소를 올려놓는다. 뼈만 앙상한 모습에 머리 부분만 조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것이 鳥葬이란 걸 알았을 땐 이미 그 곁을 지나쳐 있었기

때문에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지만, 그나마 그 모습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다음은, 인도여행의 하이라이트 <타지마할>로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