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도

9 사랑이 빚은 불후의 걸작, 타지마할

릴리c 2011. 4. 28. 18:39

사랑이 빚은 불후의 걸작...타지마할

1629년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의 두 번째 왕비 아르쥬만드 바누

베감(뭄타즈 마할)이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었다.

왕비 나이 39세. 황제는 왕비를 위해 1631년부터 궁전형식의 거대한 묘를

짓기 시작, 22년 만에 완성했다(타지마할이란 이름은 마할-궁전-로 부르고

있어 왕비를 위한 궁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왕비의 이름에서 따온 무덤의 이름).

마당에 수로(水路)를 둔 전형적인 무굴 양식의 정원과 분수가 펼쳐지고,

그 앞에는 완벽한 좌우 대칭의 흰색 타지마할이 솟아있다.

그 좌우에 붉은색의 회교사원과 회당이 있다.

타지마할 뒤편으로는 야무나 강이 말없이 흐르고....

 



 새벽 5시.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정문을 들어서니 아치를 통해,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우뚝 서 있는 타지마할이 마치 어두운 안개 속에

떠있는 듯하다. 순간 숨이 막힌다!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뒤이어 탄성이

절로 나오고 그 자리에 못 박힌듯 더 이상 발을 옮길 수가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선 채로 한참을 응시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어둠 속에 떠있는 타지마할을 찍는다.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다. 정말 아름답다!!!


 묘내부 : 격자창(대리석을 마치 상아세공품처럼 깎아 만든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도록 되어있다(내부에서는 절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후레쉬 없이 찍었더니 희미한 조명등과 격자창만 보인다).

지붕을 이루는 크고 높은 돔은, 왕비의 혼이 오래 머물도록 한 것이라고.

중앙에 왕비와 샤자한의 석관이 나란히 있고 부부의 묘비가 있다.

주변은 대리석 칸막이가 둘러쳐져 있다.

두 사람의 실제 시신은 지하 묘실에 안치되어 있다.

 

 

타지마할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니, 동쪽하늘이 붉게 타고 있다...그 또한 압권!


아치 위로 코란 구절이 쓰여 있는데, 밑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원근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위로 갈수록 글자 크기를 크게 적어 놓은 것.

그래서인지 아래와 윗부분의 글씨 크기가 동일하게 보인다.

“이곳이 천국이니 편히 쉬세요...” 중략.

 


 흰 대리석벽에는 상감기법으로 보석을 박아 넣어 아름다움에 극치를

더해준다.


아치 내부는 마치 기하학적 무늬 같아 보이지만, 타지마할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정확히 계산된 대로 대리석을 잘라 붙인 것.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딸려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모스크이며 동쪽의 것은 미학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이른바 자와브(회당)이다.


타지마할 뒤로 야무나강이 흐른다. 저 멀리, 샤자한이 8년 동안 갇혀 지내다 숨을

거둔 아그라성이 보인다.


 기단 네 귀퉁이에 있는 팔각탑...지진이 나서 탑이 쓰러지더라도 타지마할쪽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바깥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타지마할

 


시시각각 변하는 색깔. 시차를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매력에 푸욱 빠지고 만다.



 정문 옆에 딸린 회랑. 그 끝에 화장실이 있다.


석양의 타지마할 (사진출처:다른 곳에서 빌려온 것임)

석양으로 물든 타지마할, 달빛 아래 야무나 강물 위로 둥실 떠있는 타지마할은

매력을 넘어 신비한 魔力으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다른 느낌으로 보이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색감을

보여주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그들은 넋을 잃는다.  

그래서 타지마할 부근의 호텔에는, 여러 날 머물면서 타지마할의 수많은 표정을

보려는 여행객들이 늘 많다고 한다.

 

영묘에서 바라본 정문...지상에서 낙원으로의 이전을 상징하는 정문은 회교도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위쪽에 22개의 작고 둥근 돔이 있는데,  1년에 하나씩 만들어

타지마할이 22년 동안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입장료가 내국인은 2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20달러 정도)인데,

덧버선(신발 위에 덧씌움) 1켤레와 생수 1병을 준다.

 

새벽녘 어스름 속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부터 감상하는 것은

타지마할을 인류 최고의 걸작품으로서 감상하기 위한 첫걸음인 거 같다.

아침 일찍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서서히 핑크빛으로 변해가는 타지마할,

황금빛으로 바뀌었다가 아이보리색으로 변하고,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푸른빛이 감도는 흰색의 타지마할은

분명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움이다.

절제된 균형미와 완벽한 조화, 어떤 색이든 다 수용하는 순백의 아름다움...


보름달이 비치는 밤과 석양에 물든 타지마할까지 보았다면

평생 동안 간직될 추억이 되었을텐데...

그래서 인도는 ‘아쉬움’이다.

타지마할의 투명한 대리석을 변색시키는 공해의 폐해를 막고자 1994년부터

4㎞ 이내 지역에서는 자동차의 운행이 금지되고 있다. 그 때문에 동문방향

주차장에 들어서면 전기차량으로 바꿔 탄다.

그리고 타지마할 정문 멀찍이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깜깜한 새벽인데도 벌써부터 장사꾼들이 에워싼다.

입구에서의 검색이 ‘공항검색’ 수준이다.

타지마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리석에 해가 될 물품(건전지, 군것질 등의

음식물, 약 종류, 담배, 성냥, 라이터, 화장품-립스틱도 안됨-등)을 소지할

수 없다. 가방은 물론, 입은 옷 주머니까지도 철저히 검색한다.

그래서 여행객들과의 실랑이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세계 10대 불가사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일컬어지는 타지마할. 

그러나 위대한 건축물이란 약탈과 착취의 역사’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죽은 사람을 위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재물과 인명이 동원되어

피땀을 흘렸던가.

타지마할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인도 전역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설계에

따라 2만 명의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벽을 장식하는 데도 엄청난 보석을 아끼지 않았다.

무리한 재정지출로 국고는 크게 줄었고 황제의 권세도 차츰 약해졌다.

1658년, 샤자한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폐위되고, 16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8년 동안 아내의 묘가 보이는 아그라성 탑에 유폐되었다가 죽은 후에야 아내의

시신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샤자한은 타지마할과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무덤을 짓고 양쪽 무덤을 구름다리로 이을

작정이었으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샤자한이 죽고나서 60년 동안 인도는 전국시대를 맞아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타지마할도 예외가 아니어서 침략자와 힌두교도들에 의해 파손되었고 다시 복원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샤자한은 타지마할을 다 짓고 난 후 다시는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동원되었던 장인들의 손목을 모두 잘랐다고 하는데, 그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잔인하며 과시욕에 사로잡힌 황제였는지 짐작이 간다.

 

 

"순수한 모든 것, 성스러운 모든 것, 그리고 불행한 모든 것의

결정이다. 이 건물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다"

                                                        -키플링-


 

다음은 자이푸르를 끝으로, 인도여행은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