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구석구석

닭갈비 냄새와 동승하는 춘천發 경춘선을 타다

릴리c 2011. 3. 26. 00:58

춘천 서울 기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 사람만 기차를 타는 게 아님을...

 

경춘선 열차를 타면

하행선과 상행선의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그게 뭘까? 

상봉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특별할 것 없는 일반 전철의 모습이지만,

(서울에서 쇼핑한 짐을 바리바리 가져가는 사람도 있긴 하다)

춘천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전철)에 오르면

춘천의 명물 '닭갈비'가 함께 동승해 있음을 느낀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닭갈비를 먹고 오기 때문에

기차안은 마치 식당이 들어선 듯 온통 닭갈비 냄새가 진동한다.

 

 

문득, 춘천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주말에

 남편과 춘천행 열차를 탔다.

결혼 전, 우리는 춘천행 열차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기차타고 오가며 나누었던 많은 얘기를 통해 사랑이 싹텄고

우린 결혼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춘천은 우리 부부에겐 추억과 낭만의 장소로 특별하게 기억되는 곳이었지만,

결혼 후 어쩌다보니 오래도록 찾지 못했다.

 

 

요즘은 춘천이 부쩍 가까워졌다.

서울 상봉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복선전철을 타면

급행은 63분, 일반은 79분이면 춘천에 닿는다.

청량리역에서 2시간 가량을 달려야 도착했던 예전에 비하면

춘천 나들이가 '큰맘'먹지 않아도 아무 때고 휙~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됐다.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차창밖 풍경에 모든 피로가 가신다.

그래서 난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친구와 함께라면 더더욱...

 

 

 

곁에 있던 어느 꼬마가 말한다.

"아빠, 김유정이 뭐야?" "으응, 소설가 이름이야."

"근데 왜 역 이름이 김유정이지?"

 

원래의 역명은‘신남'이었으나,

이 지역 출신의 저명 문인인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12월 1일에에 역명을 변경했다.

대한민국에서 역 이름이 인물 이름으로 지정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할 땐, 동해바다로 오십시오. 머리가 아플 땐 백두대간으로..."

강원도의 관광 홍보문구가 객차마다 붙어 있다.

춘천역에 내리면 로비에 특별한 '할인쿠폰'이 기다린다.

<닭갈비 막국수 할인업소>의 연락처와 동네가 표시된 간판과

그 앞에는 뽑아갈 수 있는 쿠폰기계가 놓여 있다.

이걸 가져가면 현금 계산시 10%, 카드로 계산하면 5%를 할인해 준다.

 

 

 

 

 

춘천시내의 '명동'으로 불리는 거리.

'춘천낭만시장'으로 불리는 중앙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10여 년 전, 드라마 <겨울연가>의 무대로 등장한 이후 일본인에게 가장 유명한 지역이 된 춘천이,

 한류붐 이래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게 있다.

지난 해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다시 개통되고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달갑지 않은 소식도 간간히 들려와 모처럼의 활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대표적인 것이 '닭갈비 가격 담합'이다.

춘천에서 '이것'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고 할 정도로

누구나(나처럼 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은 빼고) 즐기는 음식이 바로 닭갈비인데,

복선전철 개통과 함께 음식점 업주들은 방문객이 많아지자 가격을 올려버린 것이다.

7, 8천원 하던 것을 거의 동시에 1만원~1만2천원으로 올렸으니

손님 입장에서는 먹기는 하면서도 왠지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게 입소문을 타더니 결국 요즘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말 한 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한국속담처럼

'정'이나 '인심'이 후한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게 한국인인데,

길게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했던 업주들의 상혼에

춘천을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 번 다녀간 사람이 다시 찾고 싶은 춘천이 되었으면...

 

지역의 좋은 이미지를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곳이 되고

모처럼의 호기를 잘 살려 지역발전이 왕성해지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매운 음식에 약한 나는 닭갈비 대신 초밥을 먹었고,

 남편은 이것저것 골라먹는 재미를 택해 '한스 델리'라는 곳에 들어갔다.

스파게티와 리조또, 마늘빵을 시켰으나 다 합해도 닭갈비 1인분 가격과 비슷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 오르니 차내엔 온통 닭갈비 냄새로 가득하다.

자리를 옮기려고 옆 칸으로 들어섰으나 거기도 마찬가지.

계속 칸을 옮겨봐도 상황은 같았다.

"어후~ 닭갈비 냄새~!" 

결국 남편이 소리치자 갑자기 '와하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스무 명 남짓의 등산 동호회 사람들이었다.

등산을 마치고 술 한 잔 곁들여 닭갈비로 기분좋게 식사하고 온듯 했다.

 그 웃음으로 인해 우리는 같은 칸에서 얘기를 나누며 서울로 향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서울로 오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더불어 산악회 여러분, 반가웠어요~! 홧팅~!!!

 

 

열차운행시각은 평일 기준으로
상봉역에서 첫차 출발 5:10, 막차 출발 23:50
춘천역에서 첫차 출발 5:10, 막차 출발 23:20

 

급행전동열차

시/종착역퇴계원, 평내호평, 마석, 가평, 남춘천 5개역에서 정차하고

주말에는 청평, 강촌 2개역에서 추가로 정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