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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언제일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릴리c 2012. 8. 21. 08:30

살아서는 신화, 죽어서는 전설이 된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의 그가 영원한 존재가 되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언제였을까?

세상에 태어난 순간?

남편을 처음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

혹 '그 순간'이 왔는데도 바보처럼 모르고 지나친 건 아닐까?

그럼,  앞으로 다가올 결정적 순간은 또 언제일까?

어쩌면 '그 순간'이 오늘 혹은 내일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매순간마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만 같은 초조함이 갑자기 밀물처럼 몰려온다.

실은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다가올 매순간 순간이 '결정적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으로 통한다' '사진 미학의 교과서' '한 시대를 직시한

시대의 눈이며 바로 그 자신이 하나의 시대' '사진의 톨스토이' '전설적인 사진작가' '근대

사진미학의 최고봉' '20세기의 눈'...으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 최고의 사진작가, 생존하는

사진작가로는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진전을 연 인물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유작전  '결정적 순간'이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9월 2일까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출신 : 프랑스

출생-사망 : 1908. 8. 22~2004. 8. 3.

 

현존하는 최고의 기획자 로베르 델피르(사진작가 겸 앙리 카르

티에와 함께 사진 거장협회 매그넘 공동설립자)가 엄선한 250점

의 흑백 사진전인 '결정적 순간'은, '찰나의 미학' '내면적 공간'

'거장의 얼굴' '시대의 진실' '휴머니즘' 등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소재에서 가장 절묘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분명 천재였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진작가였다.

 

어떤 상황이나 인물의 진수라 할 만한 순간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의 '결정적 순간'론은 지난 반세기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지침이 되었다.

피사체가 의식하지 않는 사진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그는, 라이카 카메라에 표준렌즈만

장착해 찍었고, 인화 후 보정이나 트리밍에 반대했던 그가 만일 현재 생존해 있다면,

후보정이 대세를 이루는 요즘의 실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찰나의 미학’, ‘내면적 공감’, ‘거장의 얼굴’, ‘시대의 진실’, ‘휴머니즘’ 등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분된 전시장은 각각의 콘셉트에 맞게 꾸며졌다.

‘찰나의 미학’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거장의 얼굴’에서는 피카소,

마티스 등 거장들을 촬영한 작품이, ‘시대의 진실’에서는 역사의 현장을 그만의 시각으로 담은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촬영한 사진 및 자료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평소 촬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본인 사진을 거의 찍지 못하게 했던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도

여러 점 공개된다.

취재 당시 기자증, 자필원고, 편지 등 ‘인간’ 카르티에 브레송을 말해주는 자료들도 전시돼 <결정적

순간>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1932>

비가 내린 뒤 물이 고인 파리 생 라자르 역에서 중절모를 쓴 한 남자가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기 위해 점프를 하는 순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이 남자의 모습은 수면에 반사된 그림자와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두쪽 벽면의 포스터 속 무용수의 동작과도 대칭된다.

 

<브뤼셀, 벨기에 1932>

천막에 난 구멍을 통해 서커스를 구경하는 젊은 남자와

주변을 살피고 있는 중년 남자의 각기 다른 시선의 방향과 흐름을 통해

대상의 심리적인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사진.

중절모 남성의 불안한 얼굴 표정에서 호기심과

신사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장 폴랑(1946)>

예술의 다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철학자 사르트르와 비평가 장 폴랑의 모습이다.

작은 키의 사르트르가 결코 왜소해 보이지 않음은

안개에 쌓인 다리 배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안정된 구도,

무엇보다도 꼿꼿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맨해튼 뉴욕, 미국 (1947)>

뉴욕의 마천루들 사이에 난 골목에서 한 남성과 고양이가 마주보고 있다.

거대한 빌딩과 도시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과

그들의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작품을 담아 운반해온 박스들이 전시장 한 켠을 장식하고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단 한 번도 연출해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합성이나 효과도 내지 않았다. 그는 모든 장면을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그대로 끄집어 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고 질감이 있다. 마치 한 편의 르포르타주와 마주한

느낌. 그의 작업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불멸의 사진학 교과서로 인정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 설치 이후(1962)>

하룻밤 사이에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는 장벽이 생긴 후,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서 베를린

시민들이 장벽 건너편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

벽 너머의 상황이 보이지 않듯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가돈다.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자세를 통해 이 상황에 대한 심리적인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애용했던 카메라 '라이카'.

"나는 라이카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 눈의 연장(延長)이 되어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현장범을 체포하는것처럼 길에서 생생한 사진을 찍기 위해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종일 걸어다니곤 했다. 무엇보다도 돌발하는 장면의 정수를 단 하나의 이미지 속에 포착하고 싶었다."는...

 

내 손에 쥐어본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이 꽤나 좋아했던 라이카 카메라.

그렇게 좋은 카메라인줄 알았더라면... 잘 간직해 둘 걸,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든다.ㅎㅎ

 

 <결정적 순간>이 전시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옆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장소 :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일시 : ~9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