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발칸

(발칸5)영화 세트장처럼 근사하고 세계 두번째로 긴 포스토이나 동굴/슬로베니아

릴리c 2012. 11. 12. 08:30

7천만 년 전에 이태리 요리사가 다녀갔나? 스파게티 파스타가 동굴천장에 주렁주렁

 

거대한 영화 촬영 세트장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포스토니아 동굴 내부는,

무시무시한 바닷속 괴물의 입속 같기도 하고 때론 우주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듯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가 때론 탄성을 지르게 만들거나 넋을 빼앗기도 했다.

세계적인 조각가 영국의 헨리 무어"경이적인 자연 미술관"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아름다

우면서도 기이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하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동굴.

 

전날 다녀온 블레드 호수에서 두 시간 거리의 포스토니아 동굴(슬로베니아) 

백악기 7천만 년 전 바다 속 석회암이 기반이 되어 생성된 카르스트 동굴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길고 웅장해(카르스트 동굴이란 석회암이 물과 탄산가스에 용식을 받아 생성된 지형), 1986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행여 저 뾰족한 종유석이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게 머리 위로 곧추 내리뻗은

종유석들이 왠지 으시시하기도 하지만 그 웅장함에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때론 국수 가닥이나 파스타가 천장에 달려 있는 것 같은 신기한 장면들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포스토이나 동굴은 수백만 년에 걸쳐 조금씩 형성된 것으로,

21km에 달하는 이곳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석순 1cm가 자라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긴긴 세월을 지났을지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작은 종유석이 달린 Pipe Chamber(대표적으로 스파게티 홀 -->위 사진)

붉은 석순이 많은 곳은 Red Chamber, 흰 석순이 많은 곳은 White Chamber로 나눈다.

종유석, 석순, 석주는 한 번 파손되면 다시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커튼 같기도 하고

신부 앞이마에 드리운 베일 같기도 한 석순들이 장관을 이룬다.

단순한 돌과 바윗덩이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석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연의 신비함을 넘어 우주의 섭리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때론 드넓은 광장이 나타나기도 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곳은 높이가 40m에 이르고 1만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이의 광장으로

메아리가 수 초 동안 지속돼 음향효과가 환상적이라 '콘서트 홀'이란 이름을 지녔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엔 이곳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의 지휘로

근사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 동굴을 관람하기 위해선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2km를 들어가야 한다.

출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은 즐거움과 긴장감이 뒤섞인 표정이다.

동굴은 현재까지 20km가 발굴되었고 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은 5.2km로,

꼬마열차를 타고 관람하는 왕복 4km를 빼면 1km를 걸어서 구경하는 셈.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동굴 내부 지도와 꼬마열차(전동차)를 탈 때의 주의 표시가 눈길을 끈다.

걷거나 뛰지 말고 의자에서 일어나서도 안 되며

종유석을 파손해서도 안 되고 손을 뻗는 것도 위험하다.

전동차를 타고 쏜살같이 달릴 땐 스릴도 넘쳤지만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행여 머리 위로 삐죽삐죽 솟은 종유석에 다칠까봐  무섭기도 했다.

헬멧이라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으니

전동차 탈 때는 절대 주의가 필요~!!

 

 

 수없이 머리 위를 스치는 날카로운 종유석들.

수시로 "쑤구리~!!"를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자칫 고개라도 치켜들다간 목이... 으~~ 생각만 해도 끔찍~

그럼에도 입을 다물지 못할 장관에 경탄을 거듭하면서...

 

 

 

전동차에서 내리면 넓은 광장과 언덕이 나타났다.

그레이스 마운틴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골고다의 언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관람하게 되는데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위해 4개 언어로 설명.

우리 팀은 유머 넘치는 독일어 가이드를 따라 1시간 30분 동안

신비의 세계 동굴탐험을 경험한다.

동굴 내부는 연중 섭씨 10도 정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름을 지닌 대형 석주.

 

이 동굴은 1818년  Luca Cec이라는 지역주민에 의해 발견됐고

다음 해인 1819년부터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횃불이나 촛불 등을 이용하다가 지금의 전동차가 관광객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1959년부터라고 한다.

 

동굴 발견에 대한 재밌는 얘기가 있다.

옛날에 평화롭고 한적한 이 마을에 농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동안 아무 걱정없이 살던 그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는데

키우던 닭이 자꾸만 없어지는 것이었다.

산짐승이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날 농부는 닭의 다리에 실을 묶어놓고 몰래 감시했더니

모이를 쪼며 놀고 있던 닭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놀란 그가 실을 따라 황급히 쫓아갔는데...

닭이 사라진 구멍 속으로 따라 들어가보니 그곳엔 거대한 동굴이 펼쳐졌던 것.

그렇게 해서 수천 년의 세월을 품은 동굴이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동굴 속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높이감각의 어마어마한 장관이 펼쳐진다.

사진에 보이는 다리가 '러시안 다리'인데

1차 대전 때 러시안 포로들을 수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수없이 많은 천장의 종유석들, 여전히 날카롭게 내려다 본다.

 

 

 

 마치 영화촬영 세트장에 있는 기분.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게 정말 신기하다.

 

 

이곳은 국숫가락이 천장에 들러붙은 것 같은 '스파게티 홀'이다.

"스파게티 좋아한다고 너무 많이 떼어 드시면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볼 게 없어져요~!"

독일 가이드의 장난끼어린 설명에 관람객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스파게티 홀'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이번엔 '쏟아진 케찹'이 곳곳에 보인다.

유머 넘치는 독일 가이드 덕에 동굴탐험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

 

 

 

포스토니아 동굴엔 희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Olm(올름)이라고 하는  Human Fish(인어) 동굴 도롱뇽을 실제로 볼 수 있는데

 팔과 다리가 달려 있고 몸은 백색에 가까우며 인간의 수명처럼 80~100년을 산다.

어두운 동굴에서 눈이 퇴화되었고 외부 아가미로 호흡한다.

워낙 희귀종이라 특별 보호 관리되고 있고

두 달 후 자연환경으로 보내지면 다른 휴먼피시로 교체해

관람객에게 공개하는데, 이 물고기를 직접 볼 수 있는 동굴은

전 세계를 통틀어 이곳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가 본 휴먼피시는 수족관에 있는 것으로

동굴의 원래 환경에 맞춰 어둡게 해놓아 사진 찍는데 실패.

 

 

 

동굴 탐험 중 잠시 이색적인 시간이 마련된다.

'천연의 동굴 체험'.

모든 조명을 일시에 소등하면 동굴 속 세상은 '완벽한 어둠의 세계'가 된다.

순간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 오고 이내  '빛'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짧은 순간의 소등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대형 콘서트 홀'. 이곳에서 '동굴탐험'은 끝이 난다.

여기서 베를린 필슬로베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있었고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의 독창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와 점심식사를 했다.

동굴 입구가 있는 건물 2층에서 슬로베니아 전통식으로

닭가슴살 구이에 감자 샐러드와 채소는 이렇다할 특징이 없었으나

잘게 잘린 국수가 들어 있는 스프가 특이했다.

조금 전 동굴 속 '스파게티 홀'에서 떨어진 국숫가락?ㅎㅎㅎ

맛은... 시원한 국물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일부러 사람이 적은 오전 관람을 위해 일찍부터 서둘렀기에

입장할 때는 그리 많지 않던 관광객이 동굴 밖으로 나와보니

긴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동굴로 향하는 길.

양쪽엔 기념품 상점들이 많아 시간만 허락한다면 구경할 게 많았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사진만 몇 커트 찍고 돌아왔다.

동굴에서 보았던 휴먼 피시 인형이 곳곳에서 눈에 뜨인다.

 

 

 

  

스프링에 매달려 흔들흔들 춤추던 '더벅머리 총각'.

데려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중.

 

 

 

 동굴 관람을 마친 관광객들이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휴식하는 모습이 부럽다.

늘 일정에 쫓겨다녀야 하는 패키지 여행자의 비애를 또다시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어디냐구요?

슬로베니아에 입국해 첫밤을 보낸 호텔 주변의 풍경이다.

밤에 도착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 창을 열어보니,

아~!!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내가 있었던 것~!

안개 자욱한 새벽, 슬로베니아의 한적한 시골 풍경에 사로잡혀

잠시 산책을 나선다.

중세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작은 교회와 돌다리가

엽서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맑은 강가에 앉아 새벽공기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과

한가롭게 물위를 노니는 오리들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

슬로베니아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내가 잤던 Jezero Hotel과 인근 풍경이 매우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강가에서 책읽던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 역시

깊어가는 가을 안개 낀 새벽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 주고...

 

 

포스토니아 동굴로 가기 위해 지나는 마을의 집들.

서유럽이나 동유럽과는 또다른 분위기로 무척 정겹고 예쁘다.

전날 들렀던 블레드 호수와 블레드 성을 지나 동굴로 향한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슬로베니아 시골 풍경...

 

 

 

 

 블레드 호수를 지나 포스토이나 동굴로...

 

 

 

유고내전이 맨 처음 시작된 곳이 슬로베니아이다.

1990년대 들어 소련 공산당이 몰락하고 동구 공산권 국가들도 차례로 쓰러지자

19916월 슬로베니아는 사회주의 유고 연방에서 맨 먼저 탈퇴해 독립을 선언한다.

세르비아공화국을 주축으로 한 유고 연방군은 즉시 슬로베니아에 군대를 보내 공격했지만

불과 열흘 전투 끝에 물러나 독립을 인정한다.

슬로베니아인이 인구의 85%를 차지하고 세르비아인은 2%밖에 안 되는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말릴 명분이 없었기 때문.

그래서 슬로베니아는 몬테네그로 다음으로 유고 내전의 참화를 피한 나라가 된 것이다.

 

다음 여행기는 계속됩니다...크로아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