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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릴리c 2008. 11. 17. 22:34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소재지 : 서울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

 

우리 만족은 일제에 의한 강제점령이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당하고 민족 스스로의 발전이 중단되는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역사적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민족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가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계승을 위한 배움터로 마련되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부끄러운 지난날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애국애족의 듯을 배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자 합니다.

(역사관 자료 중에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1층-추모의 장(영상실, 자료실,기획전시실),

2층-역사의 장(민족저항실, 형무소역사실, 옥중생활실),

지하1층-체험의 장(임시구금실과 고문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형무소 체험관(中央舍, 工作舍, 獄舍), 지하감옥, 사형장,

시구문(屍驅門) 복원되어 있으며

형무소의 담과 망루를 옛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망루가 보이는 서대문 형무소 정문과 역사관 전경

 

  

 

  

 

 

▲▼ (위) 용수...애국지사를 호송할 때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씌웠던 것이며,

이를 보는 사람에게 공포감과 혐호감을 주기 위해 사용했다.

 

(아래) 관(棺)보다 작은 통을 세워놓은 크기의 벽관.

이곳에 며칠씩 감금되어 고문당하면 몸이 마비된다고 하는데...

관람객이 실제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다.

 

 

 ▲악명 높은 보안과 지하 감방.

지하실 전체가 수십 개의 이런 방으로 되어 있는데 임시구금실과 고문실로 쓰였다.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잔악한 방법으로 애국지사들을 심문하고 고문했다. 

 

 

▲ 양쪽으로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1층 감방, 2층도 같은 구조다.

 이곳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애국지사는 '수감되었다'고 하지 않고

'투옥되었다'고 표현한다. 죄를 지은 '죄인'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 한 평 남짓한 방에 수감자 정원은 6명.

그러나 30여 명에 이르는 애국지사를 한꺼번에 감금,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꼼짝달싹도 못하는

상황이었을 터, 감옥의 위생과 식량배급 상태는 동물의 우리만도 못했을 거라 상상하니

끔찍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가슴이 떨리고 이내 슬픔마저 밀려왔다.

 

 이 감옥에 있는 독방은 이곳 세 개가 전부라고 한다.

벽에 기대어 내 팔 하나를 뻗으면 맞은 편 벽에 닿을 정도로 매우 좁다.

 

  

 

 

패통...감방안의 위급한 상황을 간수에게 알리기 위해 벽에 마련한 장치.

 

▼ 수감자 중 한센병(나병) 환자를 격리시켰던 곳.

추적추적 내리는 늦가을 비에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지만, 고증된 순국열사들만을 기록한 추모비.

얼마나 많은 순국열사가 더 있었는지..정확한 숫자를 알 수가 없다.

강우규, 안창호, 유관순 열사 등의 이름이 보인다. 

옷깃을 여미고...

 

 

▲▼ 사형장 입구(위)와 담장을 사이에 둔 두 그루의 미루나무(아래).

사형장 담을 사이에 두고 두 그루의 미루나무가 있다.

담장 밖의 것은 굵게 잘 자란 반면, 담 안의 미루나무는 한을 풀지 못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해설사(조성태님)의 얘기는 좀 다르다. 

재미를 위해 불확실한 얘기나 꾸민 내용을 전하게 되면,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모든 사실이 

자칫 신빙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보였다. 

 

 

 

 

사형장 내부 모습...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조국독립의 한을 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선열들의 넋이 서려있는 곳(사적 제324호).

 

시구문(屍驅門)...사형장 바로 옆에는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처형한 후,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까지 운반하기 위해 비밀통로를 뚫어놓은 굴이 있다.

일제는 그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입구를 막았으나

1992년 서대문 독립공원을 조성할 때 약 40m 정도 발굴하여 복원했다.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다가 순국한 지하감옥.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으로 열사가 다니던 이화학당에 휴교령이 내려진다.

고향으로 내려간 유관순열사는 4월 1일, 천안병천의 아우네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당하고,

그 후 3년형을 선고받고 공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919년 8월 1일 서대문감옥으로 옮겨진다.

법정모독죄가 추가되어 7년형을 선고받은 열사는

매일 아침저녁 독립만세를 외치고 그 때마다 일제의 잔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조국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다가 3.1운동 1주년이 되는 1920년 3월 1일

이신애를 비롯한 동료수감자와 함께 대규모적인 옥중데모를 일으켰다.

 

그 후 일제는 유관순열사를 지하 독방에 격리수감하고,

전보다 더 심해진 잔혹한 고문을 퍼붓는다.

고문과 영양실조를 견디지 못하고 1920년 10월 12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어찌 잊을쏘냐, 저 차디찬 독방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담장과 망루

투옥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위해 설치했던 담장과 망루의 일부를 원형대로 복원.
1907년에 경성감옥으로 새로 지을 때 담장은 나무기동에 함석을 붙여 사용했으나,

현재의 붉은 벽돌담은 1923년에 설치했다.

담장의 높이는 4.5m에 길이는 1,161m였으나 현재는 앞면 79m, 뒷면 208m만 남아 있다.
망루는 6개소였으나 2개소만 보존. 정문 망루는 1923년에, 뒤쪽 망루는 1930년에 설치한 것이다.

 

 

▲▼ 형무소 복원 과정 중 헐어낸 건물에서 나온 벽돌.

이 벽돌들은 난지도에 버려졌다가 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다시 줏어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건물 외부 바닥에 깔려있다.

 

  

 

우리 나라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비가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단체 관람을 위해 역사관에 들어가고 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 위치 : 서대문독립공원내

** 지하철 :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문의처 : 02-360-8590~1

** 관람료 : 어른 1500원 / 청소년 군인 어린이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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