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 인각사(麟角寺)
인각사는 일연(一然·1206∼1289)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절로 유명하다.
보각국사 일연은 78세에 이 곳에 와서 주지로 있다가 84세에 입적했다.
이 절은 신라 선덕왕 11년(서기 642)에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였다.
절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기린이 뿔을 바위에 얹었다고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麟角寺)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면석부가 매몰된 3층석탑을 중심으로
극락전, 명부전, 강설루, 요사채2동, 산령각, 비각, 신축 국사전등이 전부이다.
▲ 보각국사정조지탑(寶物 428호, 총고 2.42m)
인각사의 본전인 극락전 오른쪽 마당가에 지대석까지온통 드러내고 서 있는 탑이 보각국사탑,
즉 일연스님의 부도이다. 전체 높이는 약 2.42m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에 의해 도굴되어
화북3리 둥딩마을 뒷산 부도골, 비명에서 말하는 '인각사의 동쪽 언덕'에 넘어져 있던 것을
고로면 사무소로 옮겼다가 1962년에 다시 인각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신라 이래의 가장 보편적인 부도 양식인 팔각원당형을 따르고 있다.
▲ 인각사 '보각국사 정조지탑비(보물 제428호)
이 탑비는 충렬왕 19년에서 21년(서기 1293 ∼ 95)사이에 죽허(竹虛)대사가 중국 왕희지의 글자를
집자해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 미륵당 석불좌상
이 석불좌상은 인각사 주요 건물이 들어 서 있는 곳에서 떨어진 동북편 아래에 마련된 미륵당 내에 모셔져 있다. 지금의 미륵당은 舊彌勒堂이 퇴락하여 2001년에 새롭게 건립된 것이다.
미륵당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면 주변 밭과 밭두렁에는 인각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롸편들이 산재해 있다. 불상은 인각사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듯 불신 곳곳에 파손과 마멸의 흔적이 역력하다.
불상은 목부분이 절단되어 현재 시멘트로 보수하여 불신에 붙여 놓은 상태이며, 두부의 이마부분과 코, 귀 부분이 이미 파손되어 있다. 또한 양어깨 부분과 수인을 판단할 수 있는 양 팔과 손 부분등 각부분에 걸쳐 파손이 심각한 편이지만,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불상의 현상 및 양식을 파악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 미륵당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는 마당의 발굴현장.
지난해 10월부터 제 4차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건립된 8동과 고려시대 건립된
6동의 건물지와 3차례 중복된 보도 석열 및 집수구설 등이 확인됐다. 또 건물지 하층유구 폐기층에서 취두 편과 치미 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막새 편과 기와편 및 토기 편도 발견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중기까지의 문화층과 유구층은
일연스님이 주석하기 이전부터 인각사가 주요한 사찰로 자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 발굴현장에서 나온 석조물들
▲ 석불좌상 (지방 유형문화재 339호)
광배(光背)는 모서리 부분에 파괴가 심하나 보주형(寶珠形)이었다고 추정된다.
광배의 문양(文樣)은 식별이 현재로는 불가능하며, 좌대(座臺)가 결실되어 자연석에 올려두고 있다.
이 불상은 눈과 입술의 표현이 두툼하며, 의첩(衣褶)의 매듭석불(石佛)은 현재 인각사 국사전 앞뜰에 있다.
이 석불은 인각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괴산동(속칭'동정마을 아랫골')의 논에 있던 것을
1963년에 옮겨온 것이라 전한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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