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우나 애잔함에 가슴시린 단종 유배지 청령포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로 인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슬픈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 단종.
재위 3년 동안에도 삼촌(수양대군)의 권력에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왕이었고, 궁에서 쫓겨나 창덕궁에 머물 때에도 선왕(단종)은 그저 묵묵히 지내야 했다.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귀향가는 길에는 나졸들이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않았다 한다.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 유배지에 도착해보니 수풀 속에 쓰러져가는 촌가 서너 채가 고작인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그나마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넘쳐 집안으로 들어와 홍수라도 나면 피신을 해야했다.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양을 그리워 했고...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의 단종복원 사건이 터지자 금성대군은 안동옥에서 교살당했으며 결국 단종은 목숨을 유지할수 없게 되었다.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한 조선 제6대 임금 단종 그 때 나이 열... 일... 곱......
단종어가(端宗御家) 2000년 4월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원래의 어가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가 있다.
청령포에 가기 위해선 나룻배를 타고 강(西江)을 건너야 한다.
강 건너의 유배지는 뒤로는 산이 가로막혀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고립된 섬과 같다.
배에서 내려 자갈밭과 풀숲을 지나면 소나무 숲(청령포 수림지)이 있고
그 숲 안에 단종이 머물던 어가가 자리하고 있다.
청령포 수림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자갈밭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 나오는데 이를 청령포 수림지라고 부른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위치한 이 수림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로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단종어가 주변의 소나무들은 신기하게도 어가 쪽으로 몸을 뻗은 형상을 하고 있다.
단종에 대한 사모의 마음과 충성심에서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것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이
꽤 그럴 듯하다.
어리신 단종과 단종을 알현하는 선비의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되어 있어
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아릿해짐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
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이 어가는 어가 또는 적소라는 명칭에 대한 논란과 주거형태, 어가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한동안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재현했다.
이 비는 총 높이 162cm로 밑으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워
전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라 새기고
측면에는 「皇命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泣涕敬書 令原營 石」(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읍체경서 영원영수석)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전면 측면 각 1간의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관음송(觀音松)
관음송은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이 소나무가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
금표비(禁標碑)
단종 유배시에 세운 이 비석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되어 있다.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 안에서 금표나 금송에 대한 채취 금지항목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망향대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우거진소나무의 숲이 있고, 관음송은 그 소나무 숲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단종의 아픔이 서린 노산대(魯山坮).
부인 정순왕후 송씨가 그리울 때면 도성(한양)쪽을 바라보기 위해 이곳에 올랐다고 한다.
노산대에서 바라본 서강.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채 강물은 오늘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당신은 아시나요?
수려한 절경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청령포에 얽힌 단종의 비화를...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자료 참고 : 영월군청>
강원도 영월 청령포
소재지 :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
문의처 : 청령포 매표소 : 033) 370-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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