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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년 전 상류 양반 주택의 표본 명재윤증 고택

릴리c 2012. 7. 26. 08:30

작은 선비로 산 큰 선비 선생,

                              그의 선비 정신에 감동한 논산 명재 고택

 

"내가 죽은 후에 선비의 예절로서 장사 지내고,

묘비엔 내 관직을 쓰지말고 작은 선비라 쓰라."

 

조선시대 학자였던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을 둘러볼 때 문화 해설사로부터 들은 이 얘기에

감동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은 윤증 선생이 말년에 병세가 위독해지자 자손과 제자들에게 당부한 유언에 가까운

부탁이었던 것.

명재 윤증(1629~1714)은 송시열, 김집, 권시 등에게 수학한 성리학 학자로, 벼슬에는 그리

큰 뜻을 두지 않은 대쪽 같은 선비였다.

숙종으로부터 호조 참의, 대사헌, 우참찬(정이품 문관)에 제수되었음에도 모두 사양하였고,

1709년에는 아예 우의정에 임명하고 사관을 보내 임명장을 전하였음에도 끝내 이를 사양한

탓에 수많은 선비들로부터 '백의정승'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내가 방문했던 명재고택은, '큰집은 너무 과분하다'는 윤증선생이 평생 작은 집에서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한 제자들이 십시일반 재물을 모아 지어드린 것이라고 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

하늘과 땅의 형상에 대한 옛선조들의 생각을 담은 명재고택의 연못은 정방형의 네모진

모습(方地圓島)의 전형으로 연못 안에 둥근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명재 고택 입구에 서면 앞마당 연못과 함께 사랑채, 안채, 장독대, 곳간채 등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안채에 들어서니 반듯한 정사각형의 넓은 마당이 시원스럽다.

안채는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의 ㄷ자 구조와 너무나도 흡사해 너른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문득 어릴 때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물과 함박꽃이 가득 핀 장독대 옆 화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뿐, 우리 집보다 규모가 좀

크긴 했지만 나를 아련한 과거 속으로 데려다 주기에 충분했다 . 

 

 

 

안채의 대문 안쪽 모습.

사랑채 옆으로 돌아가면 안채로 향하는 대문이 있다.

흔히 대문을 열면 안채가 훤히 보이는 게 보통이지만, 이 집에서는 아래쪽이 뚫려 있는 벽이

안채를 가려주는 독특한 구조다. 주로 여인들의 공간인 안채를 보호하는 기능과, 뚫려 있는

아래쪽으로 보이는 신발로 방문자의 신원을 파악함으로써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한 배려에서다.

 

널찍한 대청마루에 북쪽으로 난 큰 창이 있어 드나들 수도 있고,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서도

건물 뒤쪽의 산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여유 있는 구조인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통해 과학적인 근거의 통풍을 고려한 구조.

해설사의 특별한 설명이 있었지만, 제대로 듣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사랑채.

명재 고택 터에 이르면 네모진 연못을 지나 대문을 통하지 않고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사랑채다.

돌로 쌓은 기단 위에 앉아 있는 형상의 사랑채는, 언제든 누구든 반긴다는 듯 대문 밖 탁트인 공간에

자리하고 있어, 이집 주인의 넉넉한 마음을 엿보는 것 같다.

높게 위치한 사랑채 누마루에 오르면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니 시선 가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랑채의 가장 큰 특징은 미닫이와 여닫이가 동시에 이뤄지는 네 쪽짜리 방문에 있다.

사람만 드나들 때는 가운데 미닫이 문을 옆으로 밀어 열고, 손님접대를 위한 큰 상을

들이거나 큰 짐이 옮겨질 때는 여닫이로 여닫을 수 있도록 설계한 문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건축 방식이었던 것 같다.

지금 보아도 3백년 전의 아이디어에 그저 감탄이 쏟아져 나올 뿐이다.

 

예약을 하면 사랑채에서의 고택체험을 할 수도 있다고.

 

 

사랑채 누마루 앞에는 한 폭의 '진경산수'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는 해시계 기능을 했던

표지석이 보인다.

손가락으로 짚고 있는 작은 구멍에 나무막대를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았던 해시계가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선조들의 숨결과 지혜를 느끼는 것 같아 반갑고 즐겁다.

 

 

 

집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굴뚝.

유난히 낮다 싶었는데, 서민들을 배려해 연기가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얘기에 또 다시 감탄.

담장의 높이 또한 높지 않은 것은,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인들이 집안에서 밖을 내다고기 쉽게

배려한 것이라니, 두루두루 인간미가 깃든 집이라는 생각에 더욱 정감이 간다.

 

 

 

대문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명재 고택의 사랑채 앞에 연못이 있고 그 옆 너른 터에 장독대가

장관을 연출하는데, 파평 윤씨 가문의 오랜 장맛전통이 지금도 생생히 살아 숨쉬며 전해진다.

항아리째 전해지고 있는 이곳의 장맛은 지금도 후손들에 의해 옛방식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논산 명재고택

주소 :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

전화 : 041-735-1215